새 정부가 경제 부문 국정 목표로 ‘민간이 끌고 정부가 미는 역동적 경제정책’을 내세우고 있어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첫 국회 시정연설에서 연금, 노동, 교육 등을 중점 개혁과제로 선정하고 강한 개혁 의지를 밝힌 바 있다. 특히 경쟁력 제고와 일자리 창출을 위한 노동개혁, 첨단 기술인재 양성을 위한 교육개혁 등을 약속해 지난 정부와 차별화된 정책을 예고했다. 때마침 민간 부문에서도 주요 기업들이 신기업가정신 선포식에 자발적으로 동참하고 향후 5년간 1085조원 투자, 29만 명 고용계획을 발표했다.
그러나 우리를 둘러싼 경제 상황이 심상치 않다. 고물가, 고금리, 고환율 등 신3고 상황이 심화되고, 경기침체와 물가상승이 동시에 일어나는 스태그플레이션 공포가 커지고 있다. 지난 5월 국내 소비자물가 상승률 5.4%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최고 수준이다. 미국의 소비자물가는 두 달 연속 8%대 상승했고, 유럽의 물가상승률도 7.5%에 달한다. 주요국 중앙은행은 인플레이션 대응을 위해 긴축의 강도와 속도를 높이고 있다. 최근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기준금리를 0.5% 포인트 올리는 ‘빅스텝’을 단행했고, 이에 환율은 더욱 가파르게 상승해 달러당 1300원 선을 위협하고 있다.
정부는 비상경제대응 태스크포스(TF) 등을 통해 위기 극복에 나서고 있지만 대응이 녹록지 않다. 그 이유로는 첫째, 3고 상황은 글로벌 공급망 경색, 주요국의 긴축정책 등 상당 부분 대외변수에 기인하기 때문이다. 에너지, 곡물 등 원자재가격 급등의 배경에는 우크라이나 전쟁, 중국 당국의 상하이와 베이징 봉쇄 등 일련의 공급 측 차질이 존재한다. 원화 가치 하락과 금융시장 변동성 심화의 배경에는 미국의 금리 인상이 있다. 3고 경제가 상당 부분 글로벌 요인에서 비롯됐기에 우리 정부가 취할 수 있는 대응 수단과 효과도 제한될 수밖에 없다.
둘째, 고부채·저성장 등 잠재 리스크가 표면화될 수 있다는 점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가계와 기업부채를 합한 민간신용은 작년 말 기준 4549조원 규모로 명목GDP의 2.2배를 넘어섰다. 통계 작성 이래 최고치다. 가계부채는 1862조원, 기업부채는 2361조원으로 1년 사이 각각 7.8%, 10.7% 증가했다. 인플레이션 대응을 위해 금리 인상이 필요하지만 기준금리가 1% 포인트 올라가면 가계와 기업의 이자 부담이 약 45조원 커진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고부채·저성장 상황에서 금리를 급격하게 인상할 경우 부실위험 확대, 소비 및 투자 위축 등이 야기돼 경기침체로 이어질 수 있다. 실물 및 금융경제 상황을 면밀히 모니터링하며 금리 인상의 속도를 조절해야 하는 이유다. 우리 경제가 경기침체의 수렁에 빠지지 않으려면 대외변수의 파급력을 최대한 줄이는 동시에 대외충격에 흔들리지 않도록 경제 체력을 길러야 한다. 전자는 금리 조절 등 단기 통화정책을 통해서, 후자는 기업의 생산성을 높이고 경제성장을 도모하는 기업주도 성장을 통해 가능하다.
기업은 최저임금 인상, 주52시간 근로제 등 소득주도성장(소주성) 정책에서 배제돼 왔다. 팬데믹 극복 과정도 생산성 향상을 고민할 겨를 없이 지출 확대에 의한 경기회복에 의존해 왔다. 그러나 재정지출과 소비 진작에 의한 경기부양보다는 기술개발과 혁신에 기반한 기업의 생산성 향상이 성장을 견인해야 국가 경제가 탄탄하게 성장할 수 있다. 우리의 성장동력을 끌어올리는 근본과제를 외면하고 현상 대응에만 급급한다면 국가 경제 전체가 휘청거리는 상황이 반복된다. 신3고 상황과 스태그플레이션 공포의 근본적 해법은 결국 민간주도성장(민주성)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우태희 대한상공회의소 상근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