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비싸 못드려요”… 반찬 줄어드는 무료급식

입력 2022-06-06 04:05
서울 종로구의 한 무료급식소에서 5일 배식한 음식. 짜장밥에 삶은 계란 반쪽이 얹혀져 있다. 달걀값 급등으로 달걀이 식판에서 많이 사라졌지만 이날은 달걀 기부를 받아 1인당 달걀 반개씩 제공했다. 무료급식소 제공

서울 종로구 한 노인무료급식소의 점심 메뉴가 단출해지기 시작한 건 약 한 달 전부터다. 매일 따뜻한 국과 밥에다 불고기, 제육볶음 등 고기 메뉴를 포함한 3가지 반찬이 제공됐는데 반찬이 한두 가지로 준 것이다. 종종 아무런 추가 반찬 없이 볶음밥이나 짜장덮밥이 나오기도 한다. 비빔밥에 얹혀지던 고기와 나물 고명은 콩나물과 상추로 대체됐다. 물가가 치솟아 급식 단가를 맞추기 어려워진 탓이다. 특히 달걀값이 무섭게 뛰어오르면서 1인당 한 개씩 나가던 삶은 달걀은 반쪽씩만 배급됐고, 지금은 이마저도 식판에서 사라졌다.

급식소 총무는 “잡채나 비빔밥에도 고기나 표고버섯 대신 양파나 당근을 더 넣어 드릴 수밖에 없다”고 5일 말했다.

식재료 물가가 급등하면서 노인,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등 취약계층에게 제공되는 ‘거리의 밥상’도 타격을 입고 있는 것이다. 사회복지단체들은 보다 저렴한 식재료로 만들 수 있는 음식으로 식단을 짜면서 버티는 실정이다.

어쩔 수 없이 배식 횟수를 줄인 곳도 있다. 강동구 행복한복지센터는 1주일에 3번 식사를 제공했지만 최근에는 주말 배식을 줄여 주2회로 운영 중이다. 배식 양도 줄여야 하는 형편이 돼 용기를 보다 작은 것으로 교체했다. 원래는 두 명이 함께 먹어도 될 만큼 넉넉히 식판에 담아줬지만 지금은 1인분 정량을 담는다. 센터를 찾는 노인 한 분이라도 헛걸음하게 하지 않으려면 부득이한 선택이라고 한다.

코로나19 여파로 줄어든 후원금은 회복이 안 된 반면 거리두기 해제로 이용자는 늘어나 재정적 부담은 더욱 커진 상황이다. 박종범 밥퍼나눔운동본부(밥퍼) 대외협력실장은 “코로나가 풀리면서 밥퍼를 찾는 분이 더 늘고 있는데 먹거리 단가는 어마어마하게 올라서 걱정”이라고 토로했다. 밥퍼의 경우 지난달 특별히 늘어난 지출이 없었는데도 적자를 기록했다.

종로구 탑골공원 인근에서 노인무료급식소를 운영하는 단체 손모 대표는 “예전에는 한 끼를 만들 때 3000원 정도 들었다면 지금은 4500원까지 잡고 메뉴를 짜야 한다”고 말했다.

후원을 현금이 아닌 농산물로 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 대한적십자사 천안봉사관 관계자는 “원래는 현금 기부가 많았지만 요즘은 ‘급식 만들 때 쓰라’며 농산물을 보내주는 후원자가 늘었다”며 “원래 100명 정도가 급식소를 찾았는데 거리두기가 풀리면서 20명 정도 늘어 후원이 절실한 상황”이라고 했다.

지난달 소비자물가지수는 지난해 5월보다 5.4% 급등했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5%대로 올라선 건 2008년 9월 이후 약 14년 만이다. 이는 무료급식소의 시름이 더 깊어질 것을 뜻한다.

그래도 많은 급식소 이용자들이 ‘작아진 식판’에 불평 대신 “고맙다”는 인사를 건넨다고 한다. 종로구 급식소 관계자는 “반찬이 줄어 죄송한 마음이 큰데 오히려 어르신들은 ‘물가가 비싼데도 이렇게 밥을 줘 고맙다’고 매일 인사하신다”고 말했다.

박민지 기자 pm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