흉악범 생명도 존엄?… 헌재 3번째 판단, 논란 잠재울 수 있을까

입력 2022-06-06 04:05
유남석 헌법재판소장을 비롯한 재판관들이 지난달 26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 앉아 있다. 헌재는 다음달 14일 사형제 위헌 여부 판단을 위한 공개변론을 진행한다. 사형제가 헌재 심판대에 오른 건 이번이 세번 째이며, 그간 2차례 심판에선 모두 합헌 결정이 내려졌다. 뉴시스

더욱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한 국가의 불가피한 선택인가, 정당화할 수 없는 또 하나의 ‘제도(制度)살인’인가. 극악한 범죄를 저지른 자의 생명도 존엄한 가치로 보호해야 하는가, 아니면 공익을 위해 제한할 수 있는가. 형벌의 본질은 범죄에 대한 응보인가, 아니면 교화인가.

사형제에 헌법적 근거가 있는지, 국제사회의 기조에 맞춰 폐지해야 할 것인지 따지는 일은 인류의 윤리적·철학적 난제에 맞서는 일이기도 하다. 한국의 헌법재판소는 앞서 1996년과 2010년 두 차례 사형제를 합헌으로 판단했고 다음 달 14일 세 번째 판단을 위한 공개변론을 시작한다. 사형제를 놓고 갑론을박이 오래 있었던 만큼 연구는 이미 충분하다고 한다. 한 헌법연구관 출신 법조인은 “결심(決心)만 남아 있는 상황으로 보인다”고 했다.

관점은 과연 우리 헌법에 사형을 허용하는 명문 규정이 있는지를 놓고서부터 갈라진다. 현재까지 헌재가 다수의견으로 내놓고 있는 답변은 “문언의 해석상 간접적으로나마 인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헌법 제110조 제4항은 비상계엄시의 군사재판에 대해 설명하면서 단서조항으로 ‘다만 사형을 선고한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고 규정한다. 헌법에서 ‘사형’이 등장하는 건 이 때가 유일하다.

사형 제도를 합헌으로 보는 견해는 이를 헌법이 간접적으로 사형제를 긍정하는 장면이라고 해석한다. 사형에 대한 선이해(先理解)를 기초로 이런 단서조항이 만들어졌다고 봐야 한다는 얘기다. 쉽게 말해 헌법 제110조 제4항 단서조항의 신설은 민간재판에서도 사형이 선고될 수 있음을 전제로 했다는 해석이다. 법무부는 13년 전 이 조항을 ‘사형제의 헌법적 근거’라고 주장했고 헌재에서 다수의견으로 받아들여졌다.

사형 제도의 위헌성을 지적하는 이들은 정반대로 해석한다. 해당 조항의 도입 배경은 사형 선고를 억제하라는 맥락이고, 그렇다면 오히려 사형제의 심각성을 지적하는 의미로 이해해야 옳다는 논리다. ‘부천 부모살해 사건’ 장본인이자 이번 위헌소원을 청구한 윤모씨 측은 “설령 헌법조항이 사형제의 근거가 된다고 하더라도, 이는 전쟁 시나 이에 준하는 상황에서의 범죄에 한해 사형제를 존치시키는 근거가 될 수 있을 뿐”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궁극의 형벌인 사형과 범죄의 예방 효과 사이의 상관관계를 분석해낸 유의미한 통계는 아직 없다고 한다. 이런 현실은 사형이 존치돼야 한다는 쪽에서나 폐지돼야 한다는 쪽에서나 반대편의 주장을 향해 “의미 있는 근거가 없다”고 비판하는 일로 이어졌다. 똑같은 현실을 놓고 합헌론 쪽에서는 “효과가 없다고 속단할 수 없다”고 말해 왔고, 위헌론 쪽에서는 “효과가 실증되지 않았다”고 맞섰다.

헌재가 과거 다수의견으로 밝힌 관점은 “사형이 다른 형벌에 비해 일반적 범죄예방 효과가 있다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범죄자가 범죄로 인해 입을 것으로 예상되는 불이익이 커질수록 범죄 행위를 포기할 가능성이 커진다고 봐야 옳다는 판단이었다. 이는 곧 사형에 위하력(威嚇力·형벌로 위협함으로써 범죄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힘)이 있다는 논리다. 많은 법률가들은 벌금형보다는 징역형이, 단기의 징역형보다는 장기의 징역형이, 유기징역형보다는 무기징역형이 범죄억지력이 크다고 본다.

반면 사형 제도의 위헌성을 지적하는 견해는 이 위하력이 과학적 통계로 뒷받침되지 않았다는 데 주목한다. 사형의 위하력 주장도 막연한 추론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사형으로 명백히 예상 가능한 것은 범죄인의 재범을 원천 차단하는 것 뿐인데, 그 효과는 무기징역형이나 종신형으로도 기대할 수 있다고 위헌론은 말한다.

보다 궁극적인 문제는 ‘남의 생명을 박탈한 범죄자의 생명도 존엄한가’ 하는 대목이다. 범죄자의 생명권도 그 자체로 보호해야 할 대상인지, 아니면 사회 공익을 위해 불가피하게 포기할 객체로 볼 것인지의 가치판단 문제다. 사회적인 여론은 이 문제에서 고개를 가로젓는다. 타인의 존엄성을 짓밟은 이들이 본인의 존엄성을 이야기할 때 피해자들은 분노해 왔다. 2010년 법무부는 “사형제도 존치에 관한 국민 여론이 폐지 여론보다 2배 이상 높다”고 했었다.

합헌론은 극악한 범죄를 저지른 자의 생명권 박탈은 무고하게 살해당한 일반 국민의 생명권 박탈과 다르다고 본다. 극단적으로 이런 두 생명권이 충돌한다면, 무고한 국민의 생명권 박탈 방지가 보다 우선시돼야 한다는 것이다. 이때 나온 말이 “국가는 때로 보다 더 소중한 가치를 지키기 위해 소중한 가치를 포기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직면하게 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반면 헌법 제10조가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는 인간은 ‘모든 국민’이라 규정한다는 점에 주목하는 견해도 있다. 아무리 극악한 범죄자라도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진다는 얘기다. 살인자의 생명 박탈이 피살자의 생명 구원으로 이어지지 못한다면, 사형엔 결국 응보의 의미만 남게 된다는 의견도 있었다. 사형은 범행 당시가 아니라 인간 본성을 일부라도 회복한 상태에서의 생명을 박탈하는 일인데, 그렇다면 인간의 존엄과 가치에 위배된다는 지적도 있었다.

아무리 훌륭한 법관이라도 인간에 불과하다는 ‘오판 가능성’도 사형제 폐지론의 가장 강력한 근거였다. 합헌론은 다만 이 오판 가능성을 형벌 제도 자체의 문제로 볼 수 없다고 선을 긋는다. 오판의 한계는 피고인의 방어권 보장, 엄격한 증거조사 절차, 판결을 시정할 수 있는 심급제도와 재심제도 등으로 해결해야 할 뿐, 그러한 한계가 곧 사형 폐지의 논리로 이어질 수 없다는 말이었다.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