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재단이 주최하는 제19회 서울국제환경영화제(SIEFF) 개막식이 지난 2일 성동구 서울숲에서 열렸다. 이번 영화제엔 73편의 작품이 온·오프라인으로 상영된다. 올해 영화제 홍보대사인 에코프렌즈로 활동하는 정재승 카이스트 교수를 이날 만났다.
뇌과학자인 그가 환경영화제에 참여한 이유는 뭘까. 정 교수는 “제 연구주제는 사람들이 의사결정을 할 때 뇌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인데, 기후변화에 대처하기 위해 어떻게 하면 더 좋은 의사결정을 할까도 고민한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는 우리가 내린 최근의 의사결정에 의해 지금의 상태에 놓여있다. 더 나은 세상으로 이동하기 위해선 더 나은 의사결정이 축적돼야 한다. 환경 문제와 뇌과학이 동떨어져 보이지만 환경 문제 해결을 위한 실천이나 의사결정은 온전히 뇌에서 벌어지는 일”이라고 덧붙였다.
정 교수는 환경 관련 활동을 오래전부터 해왔다. 환경 이슈를 다루는 토론회, 강연회 등 환경재단의 다양한 활동에 6~7년 전부터 참여했다. 지난해부터는 환경재단의 사외이사를 맡고 있다.
연구주제라는 이유만으로 환경 문제에 관심을 갖는 건 아니다. 그는 “과학자로서 죄책감도 있다. 4차 산업혁명이 보편화하면서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는 사회로 가는데 과학자들이 여기에 일조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른 국가에 비해 우리나라의 환경 문제 인식 수준은 높지 않다. 정 교수는 “우리나라는 사회적으로 환경 이야기를 많이 하지 않고 먼 얘기라고 생각한다”며 “유럽에선 사람들의 사회적 관심, TV를 켜면 나오는 이슈들이 대부분 동물이나 생태계, 지구 등 환경 문제”라고 짚었다.
그래서 환경영화제의 역할이 중요하다. 정 교수는 “2년 전쯤 ‘산호초를 따라서’(Chasing corals)라는 다큐멘터리를 봤다. 전 세계 산호의 4분의 1 정도가 백화 현상 때문에 죽어가고 산호 근처에 있는 바다 생명체도 함께 죽어가는 모습이 슬퍼 처음으로 자연환경 다큐를 보고 울었다”고 돌이켰다. 이어 “영화를 통해 실제로 내 주변에서 생명체들이 사라져가는 모습을 목격하면 사람들의 행동이 바뀔 것”이라고 기대했다.
다른 뇌과학자들은 환경과 관련해 어떤 연구를 할까. 그는 “인간의 습관적 행동을 어떻게 바꿔야 지구에 혹은 건강에 더 유익할까, 또는 동물의 생명권에 더 유익할까 같은 주제를 연구한다”고 설명했다.
습관적 행동에는 식습관도 포함된다. 정 교수는 “호모 사피엔스의 뇌가 커진 건 불에 고기를 익혀 먹기 시작하면서부터다. 부드러운 형태로 많은 에너지원을 섭취하면서 소화시간도 줄었다”며 “에너지가 온전히 뇌로 옮겨가면서 인간은 돌고래나 코끼리보다 작은 뇌를 가졌음에도 더 많은 에너지를 얻어 똑똑해졌다”고 설명했다. 이어 “본질적으로 뇌의 목적은 환경에 적응하고 생존에 필요한 에너지를 흡수해 할당하는 것이므로 보면 인간은 점점 더 육식을 갈구할 것”이라며 “이를 적절히 제어하고 몸에 필요한 만큼만 육식하면서 살아가려면 현명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다이어트에 실패하는 사람이 많듯이 식욕을 제어하는 일은 어렵다. 하지만 사람들이 소고기 대신 닭고기나 생선을 먹고 일주일에 하루는 고기를 안 먹는 식의 실천을 하면 전 지구적으로 환경에 많은 도움이 된다”고 강조했다. 정 교수도 환경을 위해 매달 하나씩 실천을 쌓아가고 있다. 그는 “집에 꽃병을 치우고 화분을 갖다 놓았다. 물을 주고 키우면서 생명과 함께한다는 생각을 많이 하고 싶었다”며 “생명을 키우니 생태를 알게 되고 종을 알게 된다”고 말했다. 육식도 줄이고 있다. 그는 “‘일주일에 하루는 고기 안 먹기’를 하는데 얼마나 힘든지 이틀로 늘리지 못하고 있다”며 “고기가 없는 식사로 세 끼를 먹는 게 쉽지 않다. 그 하루는 매 끼니를 신경 쓰면서 먹게 된다. 처음엔 생선도 먹지 않았는데 요즘엔 생선이나 계란은 먹는다. 자꾸 타협하게 된다”고 털어놨다.
영화제 개막작은 영국과 프랑스의 멸종세대 청소년들이 환경전문가들을 찾아가는 내용을 담은 시릴 디옹 감독의 ‘애니멀’이다. 정 교수는 “영화 속 청소년들이나 그레타 툰베리처럼 학교 교육의 틀에서 벗어나 지구를 생각하는 아이들이 나오는 환경이 부럽다”며 “어른들이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다. 그래서 더 울림이 크다”고 말했다.
환경을 지키기 위해선 기성세대의 노력이 중요하다는 점을 정 교수는 강조했다. 그는 “육식을 많이 하는 것에 문제의식을 갖고 생활을 바꿔보려 노력하는 모습, 동물 생명권에 대한 경각심 등을 보면 젊은 세대에겐 희망이 있다”면서 “미래 세대에게 지구를 빌려 쓰면서도 경각심 없이 사는 기성세대가 문제다. 예전보다 훨씬 풍요로운 생활을 누리는 동시에 심각한 지구 환경을 만든 것도 기성세대”라고 말했다.
“젊은 사람들이 어떻게 동물을 생각하고 지구 환경을 생각하고, 에너지 줄이려고 애쓰는지 기성세대는 보고 배워야 한다. 환경 문제에 대해 세대 간 토론도 많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임세정 기자 fish81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