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역대 정부는 예외 없이 한·중 수교 이후 지난 30년간 중국과의 관계가 중요하다고 강조해왔다. 그런데 정작 중국에 대한 장기 전략과 정책이 진지하게 구상된 적이 있는지 의구심이 든다. 동북공정, 사드 갈등 등 중국과 마찰이 발생하면 비로소 중국 전략의 필요성이 제기되곤 하지만 이 역시 문제가 봉합되면 더 이상의 논의 진전은 없었다. 단지 외교의 결과였을 뿐인 안미경중(安美經中)이 대표 전략이었던 것처럼 회자하고 있는 것이 외교 전략의 부재를 시사한다.
한국 외교에서 차지하는 중국의 비중이 날로 커지고 있고 한·중 간 교류의 양과 폭이 늘어나는 만큼 갈등과 충돌의 가능성도 증대하고 있다. 그럼에도 갈등과 위기를 예방하고 관리하기 위해 중장기 전략이 선제적으로 준비되지 못하고 있다. 대중 정책이 단기적 사후 대응 방식으로 진행된 결과 중국에 대한 다양한 정책 수단과 레버리지가 준비되어 있지 못하다. 사드 사태를 통해 경험했듯이 중국의 보복 조치 앞에서 한국은 사실상 맞대응할 수 있는 현실적 수단과 지렛대가 없었다. 대중 외교의 유일한 지렛대가 한·미동맹의 강화로만 귀결된다면 미·중 대립이 날로 치열해지는 국면에서 우리는 의도와 달리 미·중 경쟁의 소용돌이에 더 깊숙이 휘말리게 될 우려가 크다. 사후 대응하는 방식만으로는 글로벌 중추 국가로서의 한국의 국제적 위상과 영향력을 구현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한국은 경협을 기반으로 북한 문제에 대한 중국 역할을 과잉 기대해왔다. 결과적으로 북핵, 통일 문제가 중국 외교라는 착시에 익숙해지면서 정작 중국 전략은 마련되지 않았고 한·중 관계 자체의 내실화는 간과되어 왔다. 한국은 북핵과 통일문제 이외에 중국과 협의할 외교 안보 의제가 많지 않다. 그런데 두 사안은 모두 중국에 대한 전략적 의존의 문제를 초래하고 미·중의 경쟁을 의도하지 않게 한반도로 소환할 가능성이 크다. 한국이 주도할 수 있는 의제와 독자적 전략 가치를 생산할 수 있는 전략 구상이 시급하다.
중국은 오랜 교류의 역사가 있는 이웃 국가이기에 이해가 깊다고 착각하고 있다. 중국의 특수성에 대한 전문적 통찰의 결여로 대중국 정책 결정에서 일반론에 바탕을 둔 희망적 예단, 자의적 해석, 오해와 왜곡으로 인한 정책 오류와 혼선이 발생하고 있다. 중국 체제의 특수성과 유동성을 고려할 때 전문가 그룹의 상시적 자문 기능을 가동하여 집단 지혜를 동원한 객관적, 심층적 분석과 이해의 축적을 강화해야 한다. 윤석열정부는 미국과의 정상회담을 시작으로 미·중 간 무한 경쟁의 치열한 외교 무대에 본격적으로 올라섰다. 윤석열정부 외교의 피할 수 없는 도전은 오히려 중국과의 관계에서 야기될 가능성이 있다. 중국과의 위기와 갈등 발생 시 효율적이고 선제적으로 대비할 수 있는 다양한 대응 시나리오, 매뉴얼 그리고 정책 레버리지 확보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 정책 구상, 기획, 결정, 실행의 전 과정에서 기업, 전문가, 정책 실무자와 결정자가 지속해서 소통하고 협의할 수 있는 환경과 시스템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 한·미동맹 강화 외에 중국을 압박 또는 설득할 수 있는 치밀한 전략, 다양한 수단과 지렛대를 확보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장기적으로는 중국이 한국과 협력의 동기를 갖게 하는 새로운 전략 의제들을 개발해야 한다. 대중국 정책 수단은 정치 안보 영역을 넘어서 경제, 과학기술, 환경, 문화, 가치 등 다양한 영역에서 발굴, 구축할 필요가 있다. 정부 각 부처 간 체계적인 협조 기제를 구축하여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 체제와 가치를 달리하는 이웃한 강대국 중국과 어떤 관계를 설정할 것인지 국민적 합의를 기반으로 하는 전략을 구상해야 할 시점이다.
이동률(동덕여대 교수·중국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