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비싼 사진 1위, 지난달 만 레이 ‘앵그르의 바이올린’에 뺏겨

입력 2022-06-05 20:47 수정 2022-06-05 20:55

안드레아스 거스키는 2011년 이래 작품값이 가장 비싼 사진작가로 기억됐지만, 지금은 아니다. 지난달 14일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미국 초현실주의 사진작가 만 레이(1890∼1976)가 1924년 촬영한 대표작 ‘앵그르의 바이올린’(사진)이 1241만 달러(약 160억원)에 낙찰됐기 때문이다. 종전 최고가였던 거스키의 ‘라인강 Ⅱ’(1999, 433만 달러)의 3배 가까운 가격이다.

만 레이는 프랑스에서 만난 자신의 뮤즈 ‘몽파르나스의 키키’(본명 알리스 프랭)를 모델로 해서 나체 여인을 바이올린으로 변신시킨 듯한 흑백 사진을 찍었다. 인화된 사진 속 인물의 허리 부근에 바이올린 울림구멍(f홀)을 그려 넣고 다시 촬영해 초현실적인 이미지를 만들어냈다. 제목처럼 이 사진은 피부가 도자기처럼 매끈한, 관능적인 나체화로 유명한 신고전주의 화가 장 오귀스트 도미니크 앵그르의 작품을 연상시킨다. 구성상 앵그르가 1808년 그린 ‘발팽송의 목욕하는 여인’을 참조했다.

만 레이는 이 작품을 통해 기록용으로만 평가되던 사진에 회화적 요소를 접목함으로써 사진사를 새롭게 쓴 작가로 자리매김했다. 크리스티 경매의 국제 사진 책임자인 다리우스 히메스는 이 사진을 “20세기의 가장 상징적인 작품 중 하나”라고 평했다고 CNN은 보도했다.

만 레이 이전에 가장 비싼 사진이었던 거스키의 ‘라인강 Ⅱ’는 사람과 물건으로 가득 찬 그의 다른 작품들과 달리 라인강과 주변 들판을 수평선 같은 구도에 담아 고요하고 명상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마크 로스코의 추상화 같은 서정성이 있다. 명상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내기 위해 거스키는 개를 데리고 산책하는 사람, 멀리 보이는 공장 굴뚝 등 사진 속 디테일을 디지털 작업을 통해 지웠다. 1위는 빼앗겼지만 비싼 사진 상위 10위 안에는 2위인 ‘라인강 Ⅱ’를 포함해 6위 ‘시카고 선물 거래소 Ⅲ’(1999∼2000), 10위 ‘시카고선물거래소’(1997) 등 거스키의 작품이 3점이나 남아있다. ‘파리, 몽파르나스’는 11위로 밀렸다.

손영옥 문화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