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용 “인플레 진정 후 장기 불황 가능성 배제 못해”

입력 2022-06-03 04:06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2일 서울 중구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열린 '2022 BOK 국제컨퍼런스'에서 개회사를 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2일 “이번 인플레이션이 진정됐을 때 선진국을 위시해 한국 태국 중국 등 인구 고령화 문제에 직면한 일부 신흥국에서 저물가와 저성장 환경이 도래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인플레이션이 꺾인 후 장기 불황 가능성에 대비해야 한다는 의미다.

이 총재는 서울 중구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열린 ‘한국은행(BOK) 국제컨퍼런스’ 개회사에서 “인플레이션이 진정됐을 때 장기 저성장(secular stagnation)의 흐름이 다시 나타날 것인지 아직 자신 있게 말할 수 없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이 총재는 “만약 그렇게(저물가·저성장 환경이) 된다면, 폴 크루그먼 교수가 선진국 중앙은행에 조언한 것처럼 한국이나 다른 신흥국도 무책임할 정도로 확실하게 (완화적 통화정책을 지속하겠다고) 약속해야만 하는 것인지 궁금하다”고 지적했다.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미국의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가 제시했던 돈을 푸는 통화 정책이 한국을 포함한 신흥국의 장기 불황 상황에선 통하지 않을 수 있다는 뜻이다.

이 총재는 “신흥국은 통화정책 운용에 있어 더욱 신중하고 보수적으로 행동해야만 했다”며 “(자산매입 등) 선진국과 같은 비전통적 정책 수단을 활용하는 것은 통화가치 절하 기대로 자본유출 가능성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효과적 비전통적 정책 수단은 무엇인지 분명한 답을 찾기 쉽지 않으며 앞으로 풀어나가야 할 과제”라고도 했다.

이 총재는 “중앙은행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요구가 계속될 것”이라며 코로나19 대유행으로 나타난 양극화 문제를 거론했다. 그는 “양극화 현상은 높은 인플레이션으로 더 심화할 가능성이 있다”며 “소득 양극화 등의 문제를 과연 통화 정책으로 해결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이 총재는 “중앙은행의 역할이 또 다른 전환점에 서 있고, 그 역할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또 “각국 중앙은행도 이런 인식 아래 중앙은행디지털화폐(CBDC) 도입을 추진하고 녹색성장 관련 정책 개발과 이행을 구체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경택 기자 ptyx@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