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 인간만 사는 지구

입력 2022-06-03 04:08

바다 한복판에 떨어진 미사일에 대한 뉴스를 보았다. 앵커는 미사일이 지닌 국제정치적 함의에 관한 설명을 내놓았다. 같은 장면을 보면서, 나는 문득 미사일이 떨어진 곳에 사는 바다 생명체들의 생사가 궁금해졌다. 그곳에 돌고래는 없었을까, 물고기와 산호초는 폭탄에 죽거나 놀라지 않았을까 하는 걱정이 담긴 궁금함이었다.

최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뉴스에는 파괴된 지역의 풍경이 자주 보도된다. 무슨 무기로 그 지역을 파괴했는지, 사상자와 부상자는 몇 명인지, 얼마나 많은 사람이 피해를 입었는지 보여준다. 이따금 사람들과 함께 살던 반려동물들이 미처 대피하지 못해 그대로 건물 안에 갇혀 있다는 단신 뉴스도 보도되지만, 대체로 인간이 삶의 터전을 잃고 비통해하는 모습이다.

인간이 재난을 경험한다면 같은 지역에 거주하던 동식물도 안전하지 못할 텐데 재난의 풍경은 대부분 인간만을 비춘다. 탱크와 화학무기로 인해 파괴된 지역에 사는 야생동물은 어떻게 됐는지, 토양에 스며든 화학물질은 앞으로 그 지역 동식물에게 어떤 변화를 미칠 것인지 일반인은 알 길이 없다. 안다고 하더라도 재난이 보여주는 폭력은 일시적이고 즉각적일 뿐 앞으로 어떤 존재들에게, 어떤 방식으로,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 더 이상 궁금해하지 않는다.

이를 지켜보는 사람들은 환경 폭력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고, 눈에 보이지 않아서 큰 영향이 없다고 여긴다. 그러니 당장에 폐허가 된 풍경과 인명 피해 해결을 위해 무기 사용의 부당함을 말하면서도 오랜 시간에 걸쳐 지속되는 환경 폭력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 것이다. 식탁에 올라온 물고기가 먹은 미세 플라스틱이 인간 몸에 들어올 것을 두려워해도, 물고기가 사는 생태계가 파괴되는 것은 두려워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인간만 살아남은 지구에서 삶의 풍요로움을 이야기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과연 우리는 찾을 수 있을까.

천주희 문화연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