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6개월간 무역수지 누적 적자가 10조원을 넘어서면서 ‘수출 강국’ 한국의 앞길에 먹구름이 드리우고 있다. 사상 최대 수출 실적을 이어가고 있지만 원자재 수입액이 동시에 증가하면서 ‘속 빈 강정’이 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국가라는 기업의 영업이익이라 할 수 있는 경상수지에서 무역수지가 큰 부분을 차지한다는 점이 우려를 부른다. 수출 강국의 위상은 갖고 가면서 지식재산권·서비스 등 부가가치 창출 수단을 다변화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달 수출액이 전년 동월 대비 21.3% 증가한 615억2000만 달러를 기록했다고 1일 밝혔다. 19개월 연속 증가세를 이어갔으며 통계 작성 이래 5월 기준 최대 수출액을 달성했다. 반도체 등 15대 주력 수출 품목 모두 수출액 증가세를 기록했다.
수출 실적만 본다면 긍정적이지만 실속을 따져 보면 마냥 웃을 수만은 없다. 수출액에서 수입액을 차감한 무역수지가 또다시 적자를 기록했기 때문이다. 지난달 수입액은 전년 동월 대비 32.0% 증가한 632억2000만 달러를 기록했다. 이를 감안한 무역수지는 17억1000만 달러 적자로 지난 4월에 이어 2개월 연속 적자 행진을 이어갔다. 전쟁 영향으로 국제유가를 비롯한 에너지 가격이 급등하고 공급망 불안으로 원자재 가격이 고공행진을 이어가는 대외 요인이 반영됐다.
특히 적자 규모는 점점 커지고 있다. 최근 6개월간 누적된 무역수지 적자 규모는 82억8000만 달러(약 10조3334억원)에 달한다. 지난해 12월 이후 4개월이나 무역수지 적자를 기록한 탓이다.
문제는 한국 경상수지에서 무역수지가 차지하는 부분이 타국에 비해 크다는 점이다. 경상수지란 국가 간 상품·서비스 수출입, 자본·노동 등 생산요소 이동에 따른 수입을 종합한 것을 말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의 경상수지는 883억220만 달러 흑자를 기록했다. 상품수지가 762억720만 달러로 경상수지 흑자에 가장 많은 기여를 했다. 이를 감안하면 무역수지 적자가 이어지는 현 상황은 긍정적이지 않다. 서진교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경상수지를 유지하는 대부분이 무역수지이기 때문에 현 추세가 우려스러운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한국은행도 올해 경상수지 흑자 규모가 지난해의 절반 수준에 그칠 것으로 전망했다.
지속가능한 경제 성장 구조를 만들기 위해서는 수출에만 의존하지 않는 안전장치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는 제언이 나온다. 지난해 경상수지가 1410억9804만 달러로 한국보다 흑자 규모가 배 가까이 큰 일본의 경우 ‘1차소득수지’가 경상수지 흑자의 버팀목이다. 1차소득수지는 지식재산권 판매, 해외투자유치 등으로 구성된다. 서 선임연구위원은 “한국 경제도 부가가치 창출 수단을 늘리는 식으로 체질을 바꿀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정부 역시 우려의 뜻을 내비치고 있다. 배럴당 100달러 이상의 고유가와 높은 수준의 에너지·원자재 가격이 조기에 안정될 가능성이 작기 때문이다. 정부는 기업의 투자 활성화와 규제 개선에 정책 역량을 집중하는 한편 우리 산업의 공급망을 강화·안정시킬 수 있는 새로운 통상 정책을 펼친다는 계획이다. 업종별로 특화된 수출 지원책도 검토 중이다.
세종=신준섭 기자 sman32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