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시 침체가 수개월째 지속되며 주식·암호화폐(가상화폐)같은 고위험상품에서 은행 예·적금 등으로 돈이 쏠리는 ‘역머니무브’ 현상이 가속화되고 있다. 이에 맞춰 최고 연 10%에 달하는 파격적인 고금리 적금이 눈길을 끌지만 정작 뜯어보면 신용카드 신규 가입을 요구하는 등 함정이 적지 않다.
우정사업본부는 신한카드와 손잡고 지난달 ‘우체국 신한 우정적금’을 출시했다. 최고금리가 연 8.95%에 달하는 고금리 상품이다.
하지만 조건을 뜯어보면 기본금리는 1.9%에 불과하다. 나머지 7.05% 우대금리를 받기 위해서는 신한카드를 신규발급 받아서 3개월 내 20만원을 결제해야 한다.
이 적금은 1년간 최대 납입 한도(월 30만원)를 꽉꽉 채워 이용해도 세후 이자가 15만원도 되지 않는다. 반면 네이버페이·카카오페이 등에서 진행되는 이벤트에 참여해 신한카드를 신규 발급받으면 5월 기준 최대 16만원이 지급된다. 같은 신한카드를 발급받으면서도 혜택은 더 적게 받게 되는 셈이다.
케이뱅크 ‘핫딜적금X우리카드’도 마찬가지다. 최고 연 10% 고금리 적금이라고 홍보하지만 기본금리는 1.8%에 그친다. 추가 우대금리를 받기 위해서는 직전 6개월간 우리카드 이용 이력이 없는 고객이 대상 카드를 발급받아 월 20만원 이상 결제해야 하는 등 조건이 붙는다.
이 경우도 월 20만원까지만 가입이 가능해 1년 만기 이자가 11만원도 채 되지 않는다. 우정적금과 마찬가지로 빅테크 등에서 진행되는 신규 발급 이벤트(15만원 내외)가 훨씬 혜택이 좋다. 연 6% 이자율을 홍보하는 전북은행 JB카드재테크적금은 우대금리 4%를 받기 위해 JB카드를 1년간 1000만원을 쓸 것을 요구한다.
은행들의 이 같은 마케팅은 증시가 위축되며 나타나는 역머니무브 국면에서 적금족을 선점하기 위한 전략으로 보인다. 한국은행 통계를 보면 이미 3월에만 2년 미만 만기 정기 예·적금에 8조2000원이 몰렸다.
카드사 관계자는 “카드 모집인을 통해 카드를 팔면 1장당 20만원가량의 고정비가 든다.
반면 적금이자 형태로 신규 카드고객을 가입시키면 훨씬 저렴한 비용을 장기간에 걸쳐서 지급해도 되니 수익성 측면에서는 월등하다”고 말했다.
고객들은 이 같은 ‘고금리 적금’이 사실상 미끼상품 아니냐며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금리 조건을 맞추기 위해 다른 상품을 가입해야 하는 ‘꺾기’ 수법이라는 지적도 있다. 은행·카드사들은 우대금리 조건 등을 사전에 안내하는 만큼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김지훈 기자 germa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