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암동은 남산 서쪽 자락에 위치한 서울 용산구의 대표 마을이다. 서울역이 인근에 있고 남산순환로인 소월길이 북서쪽에서 남동쪽으로 지난다. 후암(厚岩)동의 옛 이름은 ‘두텁바위’인데 마을에 둥글고 두터운 큰 바위가 있었던 데서 유래했다. 조선시대에는 한적한 농촌 마을이었지만, 일제강점기에는 일본 고위 관리들이 조선통감부가 있었던 남산 아래 후암동 일대를 거주지로 삼아 고급 주택단지가 들어서며 부촌으로 군림했다. 해방 이후 이 지역은 한국인 고위 군·관, 기업인 소유가 됐다. 한쪽에선 북에서 월남한 이들과 6·25전쟁 피란민들도 판잣집촌을 이뤄 정착했다.
1950년대 후암교회에 시무한 조동진 목사는 저서 ‘세상으로 나간 목사’에서 “인간 취급도 받지 못하는 쓰레기 같은, 낮고 천한 가난한 군중과 높고 잘나고, 부한 특수층이 혼거(混居)하는 곳이 1960년대까지의 후암동이었다”고 회고했다.
1970년 이후 동부이촌동과 강남이 개발되며 부자들은 이곳을 떠났지만, 가난한 사람들은 이 골짜기를 떠나지 못했다. 오늘날 판잣집은 대부분 다가구 주택촌으로 바뀌었지만, 여전히 이곳엔 도시 빈민들이 살아간다.
“후암동에는 적어도 밥 굶는 사람이 없게 하자.”
1997년 ‘후암동 교동협의회’(이하 교동협)는 이 목적 하나로 시작됐다. ‘교동협’은 교회와 동사무소의 연합체를 뜻한다. 동사무소는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사람을 발굴하고, 교회는 재정과 인력을 협력한다. 후암동 교동협은 교단을 넘어 교회들이 연합해 지역을 섬기는 좋은 도시 모델 사역으로 알려져 다른 지역에서도 ‘교동협’을 태동시키는 계기가 됐다. 25년째 사역을 이어오며 1기 목회자들은 은퇴했다. 세대교체가 이뤄진 ‘교동협’의 사역은 더 젊고 역동적으로 변화하고 있다.
남산중앙교회(기감·유수인 목사) 산정현교회(예장통합·김호민 목사) 후암제일교회(예장합동·김내선 목사) 숭덕교회(예장순장·전종우 목사) 금성교회(예장합동·나필성 목사) 영주교회(예장통합·이상협 목사) 중앙루터교회(루터교·최주훈 목사) 후암교회(예장합동·박승남 목사) 후암백합교회(기성·김선인 목사)가 주인공이다.
지난달 25일 후암제일교회에서 유수인(67) 김호민(63) 김내선(53) 전종우(55) 목사를 만났다. ‘교동협’ 1기 막내에서 어느덧 가장 큰형님이 된 유수인 목사는 “IMF 직후 어려운 이웃을 돕기 위해 동사무소를 찾는 개교회가 많았다. 이를 지켜본 동사무소 정희준 동장이 동네 목회자들을 불러 모아 함께 식사했다. 자주 만나며 ‘교회가 지역사회를 위해 해야 할 일이 뭘까’ 고민하게 된 것이 ‘교동협’의 첫 시작이었다”고 말했다.
‘교동협’ 소속 교회는 서로를 ‘형제교회’라고 부른다. 교단과 교파를 초월해 교회 규모나 형편을 따지지 않고 오직 지역 복음화와 섬김의 자세로 뭉쳤기 때문이다.
코로나19에도 ‘교동협’의 사역은 분주하게 진행됐다. 저소득층을 위한 ‘사랑의 쌀 나누기’ ‘소외가정 결연사업’ ‘신생아 축복박스’ ‘독거노인 생일선물 전달’ ‘뽀송뽀송 세탁 서비스’ ‘코로나19 희망상자’등 다양한 사역을 펼쳐 왔다. 매년 1억원에 가까운 금액으로 어려운 이웃을 돕는다. 교회 규모에 따라 후원 액수는 다르지만 개교회의 이름은 전혀 드러내지 않고 오직 ‘후암동교동협의회’로만 지역을 섬긴다. 교회의 ‘연합’을 통한 지역 섬김으로 복음을 전하려는 의도이다. 교회 이름을 드러내야 할 때면 교회 배치 순서를 정해 위치를 바꾼다. 교회 전도지도 공동으로 제작해 동사무소와 관공서에 배포한다. 후암동 주민들이 어느 교회에 등록해도 좋다는 의미를 담았다. 성장주의, 개교회 중심의 한국교회에서 찾아보기 힘든 낯선 풍경이다.
올해 ‘교동협’ 회장을 맡은 김호민 목사는 “회장 임기도 1년에 한 번씩 돌아간다. 아홉 개 교회라 9년에 한 번 회장 직분을 맡게 되는 셈”이라고 설명했다.
“교회가 먼저 연합해서 주민들을 섬기다 보니 지역민들의 교회를 향한 호감도가 높습니다. 목회자인 우리가 지역사회에서 작은 예수로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줄 때 교회가 변하고, 성도가 변하고 세상이 변하게 되지 않을까요. 교회가 교회다운 모습으로 돌아가야 하는 가장 큰 이유입니다.”
‘교동협’ 목회자들은 매월 1차례씩 정기모임을 갖는다. 동사무소와는 분기별로 함께 모여 머리를 맞대고 지역민의 필요를 점검한다. 지원 절차나 방법, 신속하게 대응해야 하는 일들도 그 자리에서 결정된다.
동사무소에서 ‘교동협’과 협력을 담당하는 정지선 주무관은 “회의 때마다 목사님들이 지역사회가 발전되고 주민들에게 더 도움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따뜻한 마음이 느껴진다. 담당관으로서 늘 감사한 마음”이라고 말했다.
아홉 교회가 모여 의견을 조율하는 데 어려움은 없을까. 부교역자 시절부터 전임 담임목사를 통해 ‘교동협’을 지켜봐 온 전종우 목사는 “의견을 조율해서 방향을 찾아가는 것이 교동협의 아름다운 전통”이라면서 “자기주장을 내세우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다. 반대 의견, 다른 대안을 함께 모색하면서 양보하고 맞춰가며 결론을 도출한다. 개교회가 아닌 후암동의 필요를 먼저 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교동협’ 모임 외에도 목회자 강단 교류, 사모 모임도 빈번하다. 그래서일까. 목회자들은 “교동협 모임이라면 자다가도 모이고, 애경사에는 휴가 중에도 달려 온다”며 한목소리를 냈다. 심지어 2008년에는 9개 교회 공동으로 베트남에 선교사 가정도 파송했다.
김내선 목사는 “선배들이 교회 규모가 크고 작고를 떠나 서로를 존중해 주고 따뜻하게 섬겨준다. 이것이 교동협의 하나되는 비결이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담임으로 부임해 와서 혼자 교회를 세워가며 고민도 스트레스도 많았지만,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습니다. 같은 교단 목회자에게는 더 털어놓기 어려웠습니다. ‘교동협’ 목회자들은 노회도, 교단도 달라 오히려 더 편합니다. 고민도 해결하고 이 지역에서 먼저 사역해 온 선배들께 지혜도 구하며 큰 위로를 받습니다.”
목회자들의 연합을 본받아 각 교회 중직자들과 평신도들도 지역 복음화와 섬김에 협력해오고 있다. 매년 각 교회 여전도회가 연합해 ‘이웃사랑 나눔 바자회’를 열어 지역 주민에게 성금을 전달하는가 하면 연말에는 9개 교회가 연합해 ‘성탄 축하 찬양예배’를 드린다. 매년 진행되는 성탄절 합창제를 준비하며 ‘교동협’ 소속 장로들과 각 교회 성가대원이 함께 연습하고 합창하는 일은 오랜 전통이 됐다.
김호민 목사는 “후암동을 중심으로 용산구 외 다른 지역에도 ‘교동협’ 공동체가 많이 세워졌다. 코로나로 위축된 한국교회의 예배와 사역이 회복되고 있는 이때, 교회가 먼저 이런 모습으로 지역사회를 섬긴다면 교회를 바라보는 사회의 시각도 다시 바뀔 것”이라며 “각 지역의 ‘교동협’ 사역을 통해 교회를 향한 관심과 기대가 다시 살아날 수 있길 바란다”고 전했다.
‘후암동에는 적어도 밥 굶는 사람이 없게 하자’라는 초창기 다짐을 되새기며 ‘교동협’은 올해 월드비전과 연계해 아침 식사를 챙기지 못하는 아이들을 위한 조식 지원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최근에는 소외계층의 고독사에도 관심을 기울이고 동사무소와 함께 지원 방법을 모색 중이다.
유수인 목사는 “비록 화려하지 않고 세상이 알아주지 않지만, 주께서 기억하시는 이 일을 위해 앞으로도 동사무소와 협력해 묵묵히 지역사회를 섬겨 나가겠다”고 말했다.
박효진 기자 imher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