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 공포 극에 달할 때가 기회… 부동산 많이 올라 매력 잃어”

입력 2022-06-02 04:05
"돈의 역사를 돌아봤을 때 지금과 가장 비슷한 상황은 1990~91년 걸프 전쟁이다. 미국 경제가 잠시 마이너스 성장을 하면서 인플레이션이 생겼다. 투자자에게 올해는 참 힘든 해일 것이다. 전쟁이 터진 그해는 어쩔 수 없다. 지금은 불확실하고 불안하지만 걸프전의 충격은 그렇게 길지 않았고, 전쟁이 끝난 뒤 2~3년 동안 시장이 오르지 않은 적은 없다."

글로벌 인플레이션과 미국의 가파른 금리 인상 예고, 우크라이나 전쟁에 짓눌린 금융시장에 스태그플레이션(경기 침체 속 물가 상승)에 대한 경고음 또한 커지고 있다. 악재가 겹겹이 쌓여 있지만 국내 최고의 이코노미스트 중 한 명으로 꼽히는 홍춘욱(53) 리치고 인베스트먼트 대표는 위기 속의 기회를 말했다.

KB국민은행 수석 이코노미스트와 국민연금 투자운용팀장, 키움증권 투자전략팀장 등을 지낸 그는 '돈의 역사' 시리즈로 잘 알려진 베스트셀러 작가로 경제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겐 친숙한 이름이다. 홍 대표에게 자산 거품이 터질 것이라는 우려가 가시지 않는 현 상황에 대한 진단과 인플레이션 시대에 대처하는 생존 전략을 들었다.

홍춘욱 리치고 인베스트먼트 대표는 “여우 같은 투자자가 돼야 한다”고 했다. “살살 살피면서 이쪽 굴도 파보고 저쪽 굴도 파보는 거다. 미래는 아무도 모른다. 너무 베팅하지 않으면 좋겠다.” 최현규 기자

-지난달 미국이 41년 만에 물가 상승률 최고치를 기록했고 한국 소비자물가도 13년 6개월 만에 가장 높은 상승률을 보였다. 현 상황을 어떻게 평가하나.

“인플레이션은 정점을 통과했고 천천히 내려올 것으로 본다. 전쟁이 끝나지 않으면 고유가 흐름이 계속되고 인플레도 하반기까지 좀 더 이어질 것이다. 8% 넘게 오른 미국 소비자물가가 하반기에는 4~5%까지 내려가지 않을까 싶다.”

-지금의 인플레이션이 유가 반등에 따른 일시적 현상이라고 했는데, 오일쇼크로 스태그플레이션이 지배했던 1970~80년대와는 어떻게 다른가.

“중동 전쟁이 1967년 시작돼 이란-이라크 전쟁까지 15년 정도 이어졌다. 이후 고유가 시대와 불황을 배경으로 석유를 적게 쓰는 사회로 전환이 이뤄졌다. 기술 혁신이 있었고 소비자들은 연비와 전력 사용량을 고려하게 됐다. 고유가가 다시 시작됐지만 40~50년간 진행된 에너지 소비 절약의 경제 흐름은 끝나지 않았다. 전쟁이라는 외부 충격이 없었다면 작년 말이나 올해 초가 인플레의 정점이었을 것이다. 오일쇼크 때처럼 구조화된 스태그플레이션보다 1~2년짜리 인플레이션의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시장의 관심은 인플레에서 스태그플레이션 진입 여부로 옮겨가고 있다.

“위험이 높아진 건 사실이지만 아직 오지 않았다. 마이너스 성장 속에 높은 인플레이션이 발생하는 걸 스태그플레이션이라고 하는데, 미국의 물가 상승률이 높지만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생각하는 올해 미국 경제 성장률이 2%대다. 지난 30년간 연평균 성장률인 1.8%보다 높다. 지금은 스태그플레이션이 아니라 안정 성장 속의 인플레다.”


-지금의 상황을 역대 경제 위기 중 걸프전에 비교했다.

“70년대 오일쇼크와 90년대 걸프 전쟁을 비교하면 걸프전은 전쟁이 끝나자마자 국제유가가 계속 빠져서 98년에 7달러까지 떨어졌다. 이번에도 충격이 길지 않을 것으로 보지만 그때처럼 낙관적이지만은 않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석 달이 넘었는데 끝날 징후가 안 보인다. 세계 3위 산유국인 러시아의 원유를 계속 못 쓰게 되면 걸프전보다 여파가 길어질 수 있다.”

-최근 어떤 문제에 주목하고 있나.

“레버리지 청산, 그러니까 빚내서 투자했던 분들이 청산 당하는 것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부동산에 투자했던 분들이 집을 뺏기고 길거리로 내몰렸지 않나. 부동산 시장에는 아직 그런 징후가 보이지 않지만 주식 시장에는 ‘빚투’한 분들이 강제로 보유 주식을 청산 당하는 반대매매가 많아졌다. 주가가 빠지기 시작하면 돈을 빌려준 증권사가 해당 주식을 팔아서 대출을 회수하는 것이다. 빚투의 청산 혹은 그분들이 청산 당할까 두려워서 하는 매매가 늘어나면 시장이 흔들리고, 심해지면 부동산 시장과 은행까지 영향을 받지 않겠느냐는 걱정의 목소리가 나온다.”

-불확실성 속에서 어떻게 투자해야 하나,

“첫 번째는 올인하지 않는 것. 달러를 좀 사뒀으면 주식은 빠졌어도 달러 대비 원화 환율이 작년 이맘때보다 200원 올랐으니 대응할 수 있다. 두 번째는 분할 매수 분할 매도다. 환율이 1300원 근처까지 갔을 때 한 번에 달러를 파는 게 아니라 최소 석 달에 걸쳐 파는 것이다. 크게 못 벌지 몰라도 잃지 않으면 결국 이긴다.”

-안전자산이라는 금값도 두 달 동안 10% 가까이 하락했다.

“전쟁의 공포가 극심할 때 금값이 오르지만 전쟁에 대한 우려가 만성화될 때는 그 전처럼 오르지 않을 수 있다. 금리가 오를 때 금값이 오른 적도 드물다. 80년대 미국 연준이 금리를 20%까지 올렸을 때 금값은 고점에서 85% 가까이 빠졌다. 미국 금리가 연말에 2~3%까지 간다면 은행 예금을 해도 3%가 나오는데 굳이 이자도 없는 금에 투자하겠나.”

-주식 시장이 흔들리면서 ‘주식을 팔고 예금으로 갈아타라’ ‘현금 보유 비중을 늘려라’ ‘쉬는 것도 투자다’라는 이야기가 많다.

“그런 걸 봐도 시장의 쏠림이 극에 달할 때, 또 공포가 극에 달할 때가 기회임을 알 수 있다. 저는 찬스가 멀지 않았다고 보는 쪽이다. 작년에 많이 팔았던 국민연금이 올해 사기 시작했고, 한국 기업들은 환율이 유리하니 이익이 더 날 가능성이 꽤 있다. 올해 주식 시장이 오른다는 말이 아니라, 올해 사는 게 낫다고 본다. 지금이 싸다. 주식의 내재 가치가 훼손 안 된 상황에서 주가만 빠진 것이니 얼마나 좋은 기회인가. 저는 1월부터 꾸준히 국내 주식과 해외 채권을 저가 매수하고 있다.”

-한국 주식과 미국 국채에 반반씩 투자하는 자산 배분 전략을 강조하는데.

“골프장에서 일하는 20대 중반의 젊은이에게 편지를 받았다. 숙식을 골프장에서 해결하며 월 400만원을 저축한다고 했다. 어떻게 투자해야 할지 알려달라는 질문에 한국 주식과 미국 국채에 절반씩 넣는 것을 추천했다. 서로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면서 우상향하는 자산을 짝으로 같이 들고 있어야 하는데 한국 주식과 미국 국채가 그렇다. 한국 주식에 200만원, 미국 국채에 200만원을 투자하고 다음 달에 주가가 빠지면 주식을 더 많이 사고, 주가가 오르면 채권을 더 많이 사서 5대 5 균형을 맞추는 것이다. 매달 이런 식으로 리밸런싱 해나가면 계속 저가 매수를 하게 된다. 경험적으로 연평균 수익률이 8% 정도 나온다.”

-대표님의 포트폴리오 상당 부분이 ETF이고 자산의 1% 정도만 개별 종목에 투자한다고 들었다.

“개별 종목은 재미 삼아 1%만 한다. 주식 시장이 어려운 건 내가 주식을 샀는데 반대편에서 워런 버핏이 팔고 있을 수 있다는 거다. 여기는 체급 제한이 없는 사각의 링이고 정글이다. 인플레이션 시기에 BBIG(배터리 바이오 인터넷 게임)에서 건자재 철강 조선 화학으로 갈아타는 유연한 능력이 있어야 하는데 쉽지 않다. 특히 종목이 훨씬 많은 미국에 투자해 승부를 보겠다는 건 운에 기대는 일이다. 통화 분산의 차원에서 인덱스를 사는 것을 권한다.”

-증권사들이 하반기에 코스피 3000을 탈환할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하반기에 한 번쯤 반등이 나올 수 있다고 본다. 그게 추세 전환인지 ‘데드캣 바운스’(큰 폭으로 떨어지던 주가의 일시적 반등)인지 알 수는 없다. 아주 강한 반등보다 하락 약세장 속에 반등 정도 아니겠나 본다.”

-증권사 애널리스트 출신 부동산 전문가 그룹인 ‘여의도학파’의 수장으로 불리셨는데, 그동안 부동산 매수 입장을 고수하다가 최근 입장을 바꾼 게 화제가 됐다.

“작년 10월에 올해 시장을 전망하면서 강세론을 꺾었다. 잔치는 끝났고 이제 좀 진정될 것이라고 했다. 부동산이 매력을 잃었다. 우선 많이 올랐다. 지난해 전국 아파트 가격이 20.2% 상승했다. 지난 20년간 카드 버블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이 오른 것이었다.”

-부동산이 역대 가장 비싼 수준이라고 했다.

“소득은 그렇게 오르지 않았으니 소득 대비 제일 비싸다. 금리도 오르고 있어서 실질 구매자 입장에서는 부담스럽다. 다주택자 매물이 나오고 지방선거에서 개발 호재가 나오기 때문에 빠질 것 같지는 않지만 지금 사서 세금과 각종 거래 비용을 감안하면 수익이 나겠는가. 작년 이맘때 2.8%였던 주택금융공사 30년 만기 모기지 금리가 4.4%까지 올랐다.”

-새 정부에 부동산 정책을 조언한다면.

“지난해 집값이 오른 가장 큰 이유는 갭투자였다. 전세를 끼고 갭투자를 한 것뿐만 아니라 자기가 사는 전세도 대출을 받은 고위험 투자자가 굉장히 많이 늘었다. 전세자금 대출뿐 아니라 보증을 해준 게 좋지 않은 정책이었다. 장기적으로는 주택 공급을 늘려야 한다. 재건축 재개발 규제를 완화하는 순간 집값이 오를 수 있지만 금리 인상과 대출 규제로 가격 상승을 억제할 수 있다. 섣불리 정책을 취했다가 버블이 더 심해질 수도 있으니 잘 시뮬레이션할 필요가 있다.”

권혜숙 인터뷰전문기자 hskw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