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객수 세계 1위 국내선을 왜 vs 낙후지역 고통 더는 못참아 [스토리텔링 경제]

입력 2022-06-01 04:04
연합뉴스

김포공항 이전이 6·1 지방선거 막바지 쟁점으로 부상하면서 이전 필요성이나 이전 가능 여부를 두고 정치권 공방이 거세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인천 계양을 국회의원 보궐선거 후보는 인천 계양구를 비롯해 김포공항으로 인해 개발 제한을 겪은 수도권 서부 지역 개발을 위해 김포공항을 이전하겠다고 공약했다. 정치권에서 수도권 주택 공급 확대 등의 차원에서 공항 이전 필요성이 거론되기도 했다.

하지만 김포공항의 이용객 수나 수도권 거점 공항이라는 위상을 고려하면 지역 개발만을 이유로 섣부른 이전이 자칫 더 큰 문제를 일으킬 것이란 반론도 만만치 않다. 연간 수천만명에 달하는 이용객 불편은 물론 공항 이전으로 오히려 공항 주변 지역 경제가 침체할 수 있다는 관측도 있다. 공역 재설정 문제 등 비행 안전 문제 역시 해결하기 쉽지 않다.


항공업계와 교통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김포공항 이전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2000년 인천공항 개항으로 국제선 대부분을 인천공항에 내어주면서 위상이 다소 떨어지기는 했지만, 김포공항은 명실상부 중부권 거점 공항이다. 코로나로 항공 수요가 침체했던 지난해에도 김포공항의 국내선 누적 이용객은 2251만527명에 달했다. 한국 전체 인구(5178만명)의 약 43.5%가 한 해 동안 김포공항에서 국내선 비행기를 탔다는 얘기다.

특히 김포-제주 구간은 세계적으로도 이용객이 많은 노선으로 꼽힌다. 국제 항공운송정보 사이트 ‘OAG(Official Airline Guide)’에 따르면 5월 한 달 김포-제주 구간 연간 누적 이용객 수는 126만1409명으로, 전 세계 국내선 노선 중 가장 많았다. 한국공항공사에 따르면 지난해 김포-제주 구간 이용객 수는 1500만339명에 달한다. 정치권에서 김포공항 이전 공약을 두고 ‘제주(관광)완박’이란 신조어가 나온 이유다.

김포공항을 찾는 이용객이 전부 제주도만 가는 것은 아니다. 지난해 김포-김해 구간 이용객 수도 543만4445명에 달했다. 서울에서 김해공항이 있는 부산까지는 고속철도도 연결돼 있음에도 500만명 넘는 항공 수요가 있었다는 얘기다. 유정훈 아주대 교통시스템공학부 교수는 31일 “철도나 버스 등 다른 교통수단보다 항공편 이용이 더 편리한 사람들이 절대 적지 않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김해뿐 아니라 여수(80만명), 울산(65만명), 광주(52만명) 등 김포에서 다른 지역의 항공 수요 역시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다.

만약 김포공항을 인천공항으로 이전시킬 경우 김포에서 제주나 다른 지역으로 항공편을 이용하려는 승객들은 전부 인천까지 가야만 한다. 송영길 민주당 서울시장 후보가 청주공항과 원주공항을 대안으로 제시하기도 했지만, 수도권에서 청주공항, 원주공항까지 직결되는 교통 인프라가 마땅치 않다 보니 현실성 있는 대안으로 고려되기 어렵다. 유 교수는 “김포공항 같은 국가기반시설 이전은 개별 지자체 선이 아니라 국가적 차원에서 교통시스템에 대한 검토를 거쳐야 한다. 국민적 동의 없는 단계에서 김포공항 이전을 논의하는 건 시기상조”라고 말했다.

지역 개발 때문에 공항 이전이 필요하다 하지만 정작 공항 이전으로 지역 경제가 타격을 입을 가능성도 있다. 지난 2018년 김포공항 국내선 여객터미널 리모델링 당시 국토부는 향후 10년간 4만6000명의 일자리가 창출되고 15조2000억원의 생산유발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관측했다. 현재 김포공항에는 공항 부대시설과 편의시설이 있는데 공항이 이전하면 이런 일자리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

김포공항의 국내선 기능을 인천공항으로 이전하자는 주장 역시 항공기가 오르내리는 공역과 슬롯(시간당 최대 이착륙 가능 횟수) 등을 고려할 때 실현 가능성이 작다. 백호종 한국항공대 항공물류학과 교수는 “김포공항 국내선을 인천공항으로 이전하면 국제선과 국내선 항공편의 공역(空域) 구분이 상당한 난제가 될 것”이라며 “최소한 공역 문제를 어느 정도 검토해보고 안전에 문제가 없을 때 이전 논의를 시작하는 게 맞았다”고 지적했다. 민주당 국회 국토교통위 간사인 조응천 의원조차 “슬롯을 획기적으로 늘리지 않는 이상 인천공항에서 제주로 가는 국내선을 처리할 여력은 없다”고 말했다.


다만 공항 주변 지역에서는 공항 이전 문제가 숙원 사업이다. 공항시설법에 따라 김포공항 주변 지역들은 개발에 제한이 걸려 있다. 활주로를 중심으로 반경 4㎞ 이내는 건축물 높이가 아파트 13층 수준인 57.86m로, 4㎞ 경계선에서 바깥쪽으로 1.1㎞ 이내 지역 역시 112.68m(아파트 25층 수준)로 제한돼 있다. 이런 고도제한은 서울 강서구와 양천구, 부천시, 인천 계양구에 걸쳐 있다. 특히 강서구는 전체 면적의 97.3%(40.3㎢)가 고도제한 지역이다. 잦은 소음도 지역 주민들의 단골 민원거리다.

김포공항 부지를 주거용으로 개발할 경우 서울의 주택공급량은 획기적으로 늘 수 있다. 지난 대선 때에도 민주당에서는 서울 부동산 안정 차원에서 김포공항을 이전시키고 그곳에 20만 가구 안팎의 대규모 주택을 공급하자는 제안이 나왔었다. 김포공항의 총면적은 730만㎡로 위례 신도시급 규모다. 부동산업계 관계자는 “당장 재건축 규제를 풀어도 서울 주택 공급량을 늘리기에는 시차가 필요하다”면서 “만약 김포공항이 개발된다면 위례 신도시가 서울 내에 생기는 셈이어서 서울 주거환경은 획기적으로 개선될 것”이라고 말했다.

세종=이종선 기자 remembe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