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 일 산더미인데 장관 공석… 백년대계 출발부터 꼬였다

입력 2022-06-01 04:10
박순애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후보자가 지난 27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에 마련된 인사청문회 준비 사무실로 출근하며 인사하고 있다. 박 후보자는 공공·행정조직 성과 관리 분야 전문가로 꼽히지만 교육 분야 경험은 부족한 것으로 평가된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연금·노동과 함께 교육 개혁의 중요성과 시급성을 강조했지만 교육부는 현재 ‘개점휴업’ 상태다. 김인철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후보자의 낙마 후 ‘교육 수장’ 공백이 장기화하면서 리더십이 실종된 상태다. 인사와 조직이 꼬여 교육 개혁을 추진할 준비 태세가 아니란 진단이 나온다.

새 정부 교육 개혁 임무를 맡은 교육부 장·차관은 ‘문외한’에 가깝다. 지난 26일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으로 지명된 박순애 후보자는 ‘공부’ 중이다. 대학교수 경력이 있으나 유치원과 초·중·고교와 대학까지 이해관계가 첨예한 교육 현안을 다뤄본 경험은 없다. 취임 시기도 국회 후반기 원 구성 협상에 따라 유동적일 뿐만 아니라 최악의 경우 청문회를 건너뛰고 ‘선 지명 후 검증’ 대상이 될 수도 있다.

장상윤 차관 역시 국무조정실 사회조정실장으로 일부 교육 현안을 조율해본 경험은 있으나 교육 분야에 직접 발을 담근 적은 없다. 한 지역 교육청 관계자는 “두 분이 지방선거 이후 선출되는 교육감들이나 대학 총장들에게 ‘말발’이 먹힐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교육부 기획조정실과 대변인실, 운영지원과는 언제 있을지 모를 박 후보자 인사청문회 준비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대학 정책을 담당하는 고등교육정책실은 소속 국장 3명 중 2명이 공석이다. 김일수 산학협력정책관이 고등교육정책실장으로, 오석환 고등교육정책관이 기획조정실장으로 이동하면서 두 자리가 비었다. 나머지 국장인 신문규 대학학술정책관(행시 35회)은 신임 고등교육정책실장(행시 40회)보다 한참 선배여서 교체가 예상된다. 사실상 국장 세 자리가 공중에 떴다. 김 실장이 전임 실장(최은옥 34회)보다 여섯 기수나 점프해 대대적인 물갈이가 불가피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초·중등교육을 담당하는 학교정책실은 오는 7월 출범 예정인 국가교육위원회로 많은 업무가 이관될 예정이어서 대대적인 인사와 조직 개편을 앞두고 있다. 교육과 복지, 여성·청소년 등 범정부 장관 협의체인 사회관계장관회의 역시 열리지 못하고 있다.

어수선한 교육부 앞에 놓인 새 정부 국정과제도 녹록지 않다. 국정과제로 채택된 유보통합의 경우 ‘출발선의 평등’을 위해 교육부가 관장하는 유치원과 보건복지부가 담당하는 어린이집을 통합하는 작업이다. 박근혜정부는 국무총리실에 전담 조직까지 만들어 추진했으나 흐지부지됐고, 문재인정부는 시도조차 못 했다. 교육부와 복지부의 힘겨루기는 정부 내부에서 정리가 가능하더라도 유치원·어린이집 교사 처우 문제 등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초·중등 영역에서 눈에 띄는 과제는 고교학점제다. 박근혜정부에서 입안해 문재인정부가 기초를 닦고 윤석열정부가 완성할 정책이다. 고교생이 대학생처럼 진로와 적성에 맞춰 수업을 골라 듣고 학점을 쌓아 졸업하도록 하는 고교 교육의 패러다임을 전환하는 대형 프로젝트다. 학교 공간부터 대입 제도, 국가교육과정, 교·강사 수급정책 전반을 손봐야 도입이 가능하다.

대입 개편 작업도 예정돼 있다. 고교학점제 도입과 맞물리기 때문에 정시·수시 비율 논쟁을 넘어선 미래형 대입제도 개편을 모색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대학수학능력시험에 서·논술형 문항을 넣는 방안 등이 검토되고 있다. 고교학점제용 새 대입제도는 오는 7월 출범하는 국가교육위원회와 교육부가 내년부터 공론화를 진행해 2024년 2월 확정할 예정이다.

교사·강사 수급 정책은 대입 개편 못지않은 과제다. 기존 고교 교육은 국가가 교육과정을 설계하면 학교와 교사가 수행하는 ‘톱-다운’ 방식이었다. 국가가 정해 놓은 교육과정에 맞춰 학생 수에 교사 수를 연동시키면 큰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고교학점제에선 학생 수가 기준이 아니라 개설되는 수업의 수와 종류가 기준이 돼야 한다. 교사·강사 수급도 유연해져야 하는데 자칫 교직 사회의 안정성을 흔들 경우 교사와 예비 교사들의 강한 저항에 직면할 수 있다.

대학 정책은 중앙정부가 아닌 지방자치단체가 키를 쥐도록 할 방침이다. 지자체를 중심으로 지방대와 지역 산업계 등이 협업 체계를 구축해 학령인구 감소와 지방 소멸에 대응하고, 중앙정부는 이를 뒷받침해주는 역할을 한다는 구상이다. 교육과 취업 여건이 개선되면 수도권 쏠림도 개선될 거로 기대한다. 지역마다 ‘지역고등교육위원회’(가칭)를 만들어 지역 대학 발전방안 등 중요 사항을 논의하고, 지자체로 지방대 육성 및 지원을 위한 계획 수립 및 추진 업무, 사립대 임원 취임·재산처분 권한 등을 넘길 예정이다.

문제는 지자체 역량이다. 지자체 역량이 부족하거나 지역 정치에 휘말리면 대학구조조정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 지방대 육성은 결국 국가 자원의 배분 문제다. 기존 ‘교육부→대학’에서 ‘지자체→대학’으로 지원 방식이 전환되면 국고 나눠 먹기로 흐를 가능성이 커진다. 4년마다 선거를 치르는 지자체장 입장에서 특정 대학을 우대하기도 홀대하기도 어렵다.

그렇지 않으려면 평가를 해야 하는데 뒷말이 나오기 십상이다. 지난해 인하대가 교육부 평가에서 ‘부실’ 판정을 받자 인천 지역사회·정치인, 국회의원이 들고일어났고 결국 교육부가 굴복해 추가 평가가 이뤄졌다. 전북 남원 서남대 폐교 때는 지역 주민과 정치인들의 강력한 반발로 교육부가 큰 홍역을 치렀다. 더구나 지자체 주도의 지방대 육성 방안에 지역 국립대 반발이 거세다. 교육부가 이를 조율하고, 국정과제도 서둘러야 하지만 아직 첫걸음도 떼지 못하고 있다.

이도경 교육전문기자 yid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