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해 가한 경우” 추가… 이상한 ‘맹견 입마개’ 기준 확대

입력 2022-06-01 00:04
입마개를 한 대형견. 연합뉴스

개물림 사고가 반복되면서 정부가 입마개 착용 대상을 현행 5개 견종에서 ‘사람이나 동물에 위해를 가한 경우’로 확대했다. 그러나 이미 피해가 발생한 뒤에야 착용 의무 대상이 되는 탓에 예방은 미흡하다는 지적이다.

31일 국민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지난해 8월 서울 서초구청에 강남의 한 유명 영어유치원 학부모들의 개물림 사고 우려 민원이 잇따라 접수됐다. 견주가 입마개 없는 대형견과 함께 엘리베이터에 탑승해 놀란 아이들이 넘어질 뻔하는 등 사고가 우려된다는 내용이었다.

현장 확인 결과 해당 견종은 진돗개였다. 당시 적용된 법에는 도사견, 아메리칸 핏불테리어, 아메리칸 스태퍼드셔테리어, 스태퍼드셔 불테리어, 로트와일러 등 5종과 그 잡종견만 입마개 의무 착용 대상이었다.

구청 측은 “아이들과 마주칠 수 있는 시간대에는 입마개를 씌워 달라”고 요청했지만, 견주는 “입마개 착용 훈련이 돼 있지 않다”며 거부했다. 대신 아이들 등·하원 시 계단을 이용하기로 했다. 해당 유치원은 올해 초 다른 건물로 이전했다. 구청 관계자는 “유치원 측에서 안전사고를 우려해 위치를 옮긴 것 아닌가 싶다”고 전했다.

반려견과 함께 산책하던 신혼부부가 지난 19일 강원도 양양의 한 거리에서 보더콜리에게 공격을 당하는 장면. 갑자기 나타난 보더콜리는 부부의 반려견을 먼저 공격했고, 이를 제지하는 부부를 추가로 공격했다. YTN 캡처

법적 5종 맹견이 아니어도 입마개를 하지 않은 큰 개에 대한 불안과 불만이 커지는 건 개물림 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19일에는 강원도 양양에서 신혼여행 중이던 부부가 울타리를 뛰어넘어 탈출한 보더콜리에 물리는 사고가 발생했다. 보더콜리 역시 의무 착용 견종에 해당하지 않는다. 그 이튿날 충남 태안의 한 아파트 단지 내에서 7살 아이와 엄마가 맹견 2마리에게 공격을 당해 아이가 얼굴을 심하게 다치기도 했다.

개물림 사고가 반복되는 상황에서 지난 4월 26일 동물보호법 전부 개정안이 공포돼 5종 맹견을 대상으로 한 입마개 착용 기준을 확대 적용할 수 있는 기준이 신설됐다. 맹견에 해당하지 않는 일반견도 사람이나 동물에 위해를 가한 경우 시·도지사가 진행하는 ‘기질평가’ 결과에 따라 입마개를 착용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다. 다만 입마개 착용 의무 확대는 공포 2년 뒤인 2024년 4월부터 시행된다.

하지만 기질평가 단서에 대한 우려도 있다. 위협을 가하는 일이 벌어진 뒤에야 평가가 이뤄져 예방 효과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또 사고를 낸 뒤 해당 견종에 대한 경찰 신고나 구청 민원 접수가 이뤄지지 않으면 사고 이력이 남지 않기 때문에 강제 대상이 되는지도 불투명하다.

조경 광주여대 반려동물학과 겸임교수는 “견주들이 스스로 자기 개를 평가해서 자발적으로 입마개를 쓰게 하거나 미착용 사고에 대해 처벌을 강화하는 등 대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농림축산식품부 관계자는 “특정 품종이나 몸 크기에 따라 강화된 의무를 부과하려 했지만 동물 관련 전문가들로부터 ‘일률 적용은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있었다”며 “의무 조항이 강화된 만큼 안전사고에 더 신경 쓰겠다”고 말했다.

성윤수 기자 tigri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