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공공기관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역량 강화를 위해 개정한 통합공시제도가 헛돌고 있다. ESG 공개 대상으로 분류된 항목을 공시한 공공기관은 전체 350곳 중 단 한 곳도 없었다. 기획재정부의 관리·감독이 소홀하다는 지적이다.
정부는 지난 2월 공공기관 통합공시 기준을 개정하면서 ESG 공시 항목으로 10개를 추가했다. 연간 에너지 총 사용량 등 환경 항목이 5개로 가장 많았다 사회 부문에서는 개인정보보호 진단 결과 등 3개 항목이, 지배구조에서는 공공기관 종합청렴도 등 2개가 추가됐다. 공기업들은 이들 10개 항목을 신규로 공시할 의무가 있다.
해당 항목들은 공시 기간이 서로 다르다. 4개 항목의 경우 지난 4월 공시해야 하는 항목으로 분류된다. 환경 항목인 ‘연간 에너지 총 사용량’ ‘연간 폐기물 발생실적’ ‘연간 용수(물) 사용량’과 지배구조 항목인 ‘감사부서 설치 및 운영현황’이 그 대상이다. 나머지 5개 항목은 오는 7월까지만 공시하면 된다. 환경법규 위반 현황은 위반할 때마다 수시로 공시해야 한다.
하지만 지난달 공시 대상이었던 항목을 공시한 공공기관은 단 한 곳도 없었다. 31일 국민일보가 공공기관 경영정보 공개시스템 알리오를 통해 확인한 결과 4개 항목 공시 결과를 확인할 수 있는 공공기관은 전무했다.
이 때문에 윤석열정부 국정과제이기도 한 ‘공공기관 혁신’이 첫걸음부터 삐걱거리는 거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는 혁신의 일환으로 공공기관의 자체 ESG 역량을 강화하겠다고 밝혔지만 ESG 경영 상황을 확인할 방법조차 없는 상황인 셈이다.
기재부는 해당 항목들이 신설된 만큼 정보 취합에 시간이 걸려 올해는 예외적으로 공시 유예기간을 뒀다고 해명했다. 4월까지 공시했어야 하는 항목들을 7월까지 공시하도록 지침을 내렸다는 것이다. 기재부 관계자는 “7월 이후에도 공시가 이뤄지지 않으면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에 따라 벌점을 부과할 예정”이라며 “현재로서는 벌점 부과 대상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다만 모든 공시 항목에 대해 점검이 매해 이루어지지 않는 만큼 즉각 벌점이 부과되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ESG 경영 관련 10개 항목 외에도 30개 이상의 공시 항목이 있는데 공공기관이 올리는 공시를 모두 다 확인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기 때문이다. 기재부는 올해 동반성장과 청렴도 공시를, 내년에는 환경 관련 공시를 점검할 것으로 알려졌다.
세종=권민지 기자 10000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