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만날 수 없었다. 거의 흔적도 없었다. 유령을 쫓아다니는 것 같았다. 취재팀은 누구랑 그렇게 통화를 했단 말인가. 취재 과정에서 연락했던 범죄자 전문 심리상담업체들(국민일보 5월 30일자 11면 참조)의 정체를 눈으로 확인하기 위해 이들이 홈페이지에 밝힌 사무실 주소를 모두 방문했지만 거기에 그들은 없었다.
유령들
성범죄 피의자를 가장한 취재진에게 범죄자 전문이라는 심리상담업체들은 비대면 상담을 권했다. 정상참작용 심리상담 소견서를 얼굴 한번 안 보고 써준다는 얘기였다. “전화로 충분하다. 당신한테도 그게 훨씬 좋지 않으냐”는 투였다.
이들은 사무실 주소라며 홈페이지에 여러 곳을 올려두고 있었다. 전화로만 상담하면 이 많은 사무실은 무슨 일에 쓰고 있단 말인가. A심리상담센터와 C심리상담센터, 그리고 C센터 대표가 운영하는 다른 업체들의 서울·경기 소재 주소지는 모두 6곳이었다. 이들을 지난 11일과 13일 사이 모두 가봤다.
A센터의 인천 사무실은 인천항 인근이었다. 업체가 입주한 빌딩은 임대조차 다 끝나지 않은 신축 건물이었다. A센터 사무실이 있다는 건물 7층 한 귀퉁이는 공유오피스로 쓰이고 있었다. 40여개 업체가 장소를 빌려 이름을 올려놓고 있었다. 말이 ‘회사’지 거의 유령들이었다.
각 업체에 배정된 공간은 대부분 1평(3.3㎡)짜리 1인 사무실이었다. 넓은 공간을 채 썰듯 촘촘하게 칸막이를 쳐서 수십개 공간으로 나눴다. 책상 하나 놓으면 꽉 차는 수준이었다. 임대료는 월 18만원. A센터는 이런 공간 하나를 빌려 쓰고 있었다. 자리엔 아무도 없었다. A센터 말고도 태반이 빈자리였다. 공유오피스 관계자는 “대부분 사업자가 계약만 하고 평소엔 나가서 영업하느라 자리에 없다”며 “간판도 안 달고 일하는 사람이 많다”고 전했다.
소름 돋는 사실
A센터 서울 사무실은 법원이 즐비한 서초구의 한 낡은 빌딩 2층 ○호에 있는 것으로 돼 있었다. 가서야 알았다. “우린 A센터와 다르다”며 차별성을 강조했던 C센터 대표가 운영하는 행정사사무소의 주소와 같았다. 그는 “거기 갔다가 (만족 못하고) 우리한테 오는 분이 많다”고 했는데 그 고객들은 제자리걸음을 했다는 소린가.
2층은 고색창연한 나무 간판에 한자로 이름을 새긴 개업 변호사들의 사무실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들 사이에 끼어있는 ○호엔 A업체 간판도, C센터 대표의 행정사사무소 간판도 달려 있지 않았다. 사무실을 사용 중인 건 둘 중 누구도 아닌 드론업체였다. 유리문을 두드리고 들어간 사무실 책상 위 곳곳엔 드론과 각종 공구가 널려 있었다. 이곳을 찾은 시간이 오후 3시쯤이었다. 20분 넘게 기다렸지만 아무도 오지 않았다.
이곳도 일종의 공유오피스였다. 사무실을 소유한 업체는 6개월 단위로 26만4000원을 받고 주소를 갖다 쓰게 해준다. 이런 걸 ‘비상주 계약’이라고 했다. 빌린 주소는 사업자등록에 쓴다. 실제로는 사용하지 않는 장소를 세무서에 회사 주소로 올려 영업 허가를 받는 것이다. 드론업체는 실제 사무실을 이용하는 ‘상주 계약’을 한 업체였다.
공유오피스 관계자는 “사업체를 차리고 싶은데 사무실 임대가 부담스러운 분들이 계약을 하시는 편”이라며 “주소지를 빌려드리면 그분들이 직접 세무서 가서 사업자등록을 하는 식이라 업체들 사정을 일일이 다 알진 못한다”고 했다.
위장전입
다른 주소지들에서도 해당 그들을 찾을 수 없긴 마찬가지였다. C센터의 서초구 사무실도 비상주 계약 상태였다. 이 업체 강남구 사무실은 테헤란로에 있는 걸로 돼 있었다. 주소가 불완전해 그 일대 16개 빌딩을 모두 들어가 확인했지만 비슷한 사무실도, 공유오피스도 없었다.
그나마 ‘꼬리’가 보인 주소지는 C센터 대표가 자신의 행정사사무소 주소 중 하나로 올려둔 경기도 안양 사무소였다. 이곳 3층엔 한 의료기기 인증 컨설팅업체가 있었다. 1~2층은 의료기기를 만들어 포장·판매하는 공장이었다. 컨설팅업체 직원은 취재진이 C센터 대표 이름을 꺼내자 처음엔 모른다고 했다가 뒤늦게 “저희 대표님”이라고 설명했다.
C센터 대표는 이후 취재진과의 통화에서 해당 업체 대표가 아니라 “단순히 도와주는 관계”라고 말했다. ‘단순히 도와주는 사람’이 어떻게 ‘저희 대표님’으로 불리는지는 해명하지 않았다. 그는 한 건설경영컨설팅업체 홈페이지에도 대표로 이름이 올라 있지만 이 역시 도와주는 관계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그의 해명은 단순히 도와주는 조건으로 해당 업체 주소를 자기 회사 사무실 주소로 쓰고 있단 얘기나 다름없었다. 명백한 위장전입이다.
범죄심리상담센터 운영자들은 그렇게 일정한 사무실도 없이 공유오피스나 남의 사무실에 이름만 올려둔 채로 심리상담사업을 벌이고 있었다. 공유오피스에는 대부분 주소만 빌리는 비상주 계약을 했다. 대면 상담을 받겠다는 사람한테까지 “그럴 필요 없다”며 비대면 상담을 강권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다. 어차피 범죄자들은 선처나 받으려는 것일 테니 전화 한두 통으로 끝내는 게 서로에게 ‘윈윈’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사용하지도 않을 사무실 주소를 이름만 들어도 휘황찬란한 서울 강남구나 서초구에 둔 건 후광효과를 노린 것으로 보인다. 성범죄 정보 공유 인터넷 카페와 제휴한 B심리상담소의 주소지도 강남구 한 빌딩의 공유오피스였다.
상담센터 차리기 쉬워도 너무 쉽다
심리상담센터는 누구나 차릴 수 있다. 병원이나 음식점은 의료법이나 식품위생법 적용을 받기 때문에 별도 신고 절차를 거친다. 지방자치단체가 관리한다. 하지만 심리상담센터는 세무서에 사업자등록만 하면 바로 영업을 시작할 수 있다. 그런 심리상담센터들에 비상주 공유오피스는 말하자면 ‘아지트’다. 건물을 사거나 빌릴 만한 돈이 없어도 사업자등록을 받을 수 있는 데다 소액으로도 강남과 서초 한복판에 입성한 ‘능력 있는 업체’로 둔갑할 수 있다.
돈 받고 ‘위장전입’을 할 수 있게 해주는 비상주 공유오피스는 위법 소지가 있다. 부가가치세법 제6·8조에 따르면 사업자들은 사업장 소재지를 기준으로 부가가치세를 내야 한다. 해당 주소가 진짜 소재지로 인정받으려면 그곳에서 실제 사업을 해야 한다. 공유오피스를 쓸 땐 업무 공간이 구분돼 있어야 한다. 세무 당국이 우편물 등으로 연락도 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기준을 적용하면 취재진이 확인한 심리상담센터들은 세무서 직권 폐업 대상이었다. 문제는 합법적 소재지 여부를 판가름할 구체적 기준이 법령에 없다는 점이다. 실제로는 세무 공무원 개개인의 판단에 맡기고 있다. 한 세무 공무원은 “노트북 하나로도 가능한 사업이면 사업자등록을 내준다”고 전했다.
법령에 구체적 기준을 넣기도 쉽지 않다. 국세청 관계자는 “‘실질적으로 고정된 장소가 아닌데 사업자등록을 내주는 게 문제가 있지 않으냐’는 시각과 ‘사업장이 필요 없는 업종도 많은데 공유오피스를 왜 제재하느냐’는 시각이 동전의 양면처럼 공존한다”며 “국세청 입장에서도 세부 판단 기준을 더 늘리는 게 옳은지 명확히 얘기할 수 없는 현실”이라고 설명했다.
‘꼬꼬무’ 허장성세
절박한 이들을 낚으려는 심리상담업체들의 눈속임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그들은 ‘브랜드대상 수상’ 이력까지 사다 쓰고 있었다. 그들이 상담 전문가 노릇을 할 수 있도록 민간자격증을 발급해주는 업체들도 이런 꼼수를 애용했다.
A센터는 앞서 소견서 발급을 문의한 취재진에게 문자메시지로 ‘2021 최고브랜드대상’ 수상을 자랑하는 이미지를 보냈다. 홈페이지에도 크게 걸려 있었다. 시상업체는 “단순 교육이 아닌 심리상담을 통한 재범방지교육을 제공해 또 하나의 양형자료로 활용 가능케 한다”고 치켜세웠다. A센터는 교육기간 7일짜리 소견서를 5~10분 전화 한 통으로 써준다던 업체였다.
시상업체도 역시 실체가 없었다. 사무실이 있다던 서울 강서구 한 빌딩 7층엔 그런 업체가 없었다. 주변 업체들도 “처음 들어본다”는 반응이었다. 빌딩 관리사무소 직원이 알려준 ○○호 출입문엔 다른 상호가 붙어 있었다. 옥색 철문은 굳게 잠겨 있었다. 수차례 두드렸지만 인기척이 없었다. 홈페이지에 나온 전화번호는 먹통이었다. 브랜드 가치를 어떻게 판단·심사하는지 대표에게 물어보려고 이메일로도 취재요청서를 보냈지만 한 줄의 해명도 받을 수 없었다.
심리상담센터들은 법무부 보건복지부 등 정부부처 로고도 도용했다. C센터는 공식 블로그 맨 위에 법무부와 대법원 로고를 달고 있었다. 법무부는 C센터와 아무 관계가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이후 법무부 전화를 받은 C센터는 황급히 해당 로고들을 삭제했다. 정부기관 로고 등을 영업에 사용하는 건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상 부정경쟁행위다. 특허청으로부터 행정조사나 시정경고를 받을 수 있다.
그들의 생존법
성범죄 유죄 확률이 높아지면서 피의자들의 간절함은 더 커졌다. 일부 로펌은 사건 수임을 위한 다양한 방법 중 하나로 심리상담 소견서라는 상품을 파는 이들과 손을 잡는다. 소견서를 팔려면 심리상담 전문가로 보일 자격이 필요하다. 우후죽순 늘어난 자격증 발급업자들이 헐값에 1·2급 딱지를 붙여 심리상담사 자격을 판다. 손쉽게 심리상담사가 된 이들은 값싼 비상주 공유오피스에 주소를 빌려 번듯한 심리상담센터로 사업자등록을 한다. 그러고는 빈약한 공신력을 펌프질하기 위해 브랜드대상 판매업자를 찾거나 정부기관 로고를 훔쳐 홈페이지를 꾸민다.
취재가 계속되자 해당 업체들은 하나둘 간판을 내리거나 몇 안 되는 흔적마저 지우고 더 꽁꽁 숨었다. C센터 대표는 지난 18일 전화로 폐업 의사를 밝혀왔다. 이 업체 홈페이지와 블로그는 사라졌다. A센터에 ‘브랜드대상’을 준 업체도 어느새 홈페이지를 없애버렸다. A센터는 시상업체와 연락이라도 주고받은 듯 홈페이지에서 브랜드대상 홍보 이미지를 삭제했다. 취재팀이 지난달 2시간 만에 심리상담사 1급 자격을 땄던 민간자격 발급업체는 보도(국민일보 5월 25일자 1·4·5면 참조) 이후 해당 동영상 강의를 모두 교체한 것으로 확인됐다.
다음 화에는 이름난 심리상담소에서 벌어진 낯뜨거운 언행을 보도한다. 상대는 모두 성폭력 피해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여성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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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탐사팀 강창욱 이동환 정진영 박장군 기자 issu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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