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를테면 ‘칼집 속의 칼’이라고 할까요. 아주 극단적인 경우에 대비할 제도 자체는 있어야 되지 않는가. 만약 그것마저 없애면, 혹시 좀 불안이 가중되면 어쩌나 하는 생각을 떨쳐 버릴 수가 없어 한쪽 입장을 선택했던 것이고요. 이후 여러 상황이 진전이 되고…국가인권위원회의 입장에서 이제는 동의해줘도 될 때가 되지 않았나 합니다.”
송두환 국가인권위원장은 지난해 인사청문회에서 사형제 폐지에 동의할 만큼 시기가 성숙했다는 입장을 밝혔다. 헌법재판관이던 2010년 사형제 합헌 의견을 낸 그의 말은 사회 기류 변화를 보여준다. 법원이 절대적 종신형이라는 ‘법에 없는 형벌’을 거론할 만큼 사회의 변화가 뚜렷하지만, 헌재가 합헌 근거로 언급한 범죄억지력과 정당한 응보 필요성은 변치 않았다는 목소리도 여전하다.
다수 재판관들이 1996년과 2010년 사형제 존치를 결정한 근거는 크게 ‘흉악범죄 예방 효과’와 ‘응보를 통한 정의실현’으로 나뉜다. 처음 사형제 위헌 여부를 판단한 1996년 헌재는 사형을 “죽음에 대한 인간의 본능적인 공포심과 범죄에 대한 응보 욕구가 서로 맞물려 고안된 필요악”으로 규정했다. 무기징역형이 사형과 대등한 범죄억제 효과가 있다는 주장은 가설 수준에 머무른다는 게 당시 헌재 판단이었다.
2010년 2차 합헌 결정에서도 헌재는 극악한 범죄는 사형이 불가피하다고 봤다. 무기징역만으로는 피해자 가족을 포함한 국민의 정의 관념에 부합하지 못하는 사건이 있을 수 있다는 취지에서다.
이후 12년 만에 사형제를 다시 심판대에 올린 헌재는 결국 범죄억지력과 국민 법감정을 놓고 시기적 적정성을 따져 세 번째 판단을 내릴 것으로 보인다. 1996년 헌재도 “사형은 제도 살인의 속성을 벗어날 수 없다. 필요성이 거의 없어지거나 국민 법감정이 그렇다고 인식하는 시기가 되면 곧바로 폐지돼야 한다”고 언급했었다. 2010년 합헌 의견을 낸 재판관 5명 중 2명은 대상 범죄를 줄이거나 시대상을 반영해 제도를 점진적으로 개선해야 한다며 사형제가 ‘시한부 제도’임을 시사했다.
사형 선고가 거의 이뤄지지 않는 상황도 2차 합헌 결정 이후 나타난 변화다. 대법원의 경우 2016년 2월 육군 22사단 일반전초에서 총기를 난사해 동료 5명을 살해한 임모 병장에게 사형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한 게 마지막이었다. 하급심에서도 사형을 구형한 사건에 대체로 무기징역을 선고하는 추세다. 세 모녀 살인 사건을 심리한 항소심 재판부는 ‘가석방 없는 종신형’이 집행돼야 한다는 의견을 밝히는 등 사형제 대안 필요성을 밝히기도 했다.
사형제폐지운동을 하고 있는 이상혁 변호사는 30일 “위헌 의견을 내는 재판관들이 점차 늘어온 만큼 이번에는 헌재가 위헌 판결을 내릴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번 헌법소원의 보조참가인 대리인인 이 변호사는 “평균수명을 감안해 가석방을 허가하는 상대적 종신형으로 사형을 대체해야 한다는 취지로 변론할 예정”이라고 했다.
임주언 구정하 기자 e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