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값 상승·공사비 인상 겹친 청약시장… 분상제 손질로 혈 뚫나

입력 2022-05-31 20:24
집값과 공사비가 오르며 청약 시장에도 변화의 조짐이 보인다. 공사비를 놓고 시공단과 조합이 갈등을 빚으면서 공사가 중단된 서울 강동구 둔촌주공 재건축 현장이 썰렁하게 방치돼 있다. 뉴시스

오랜 집값 상승에 공사비 인상까지 겹치면서 주택청약 시장의 미래가 불확실해졌다. 집값 상승기 내내 ‘선당후곰(선 당첨, 후 고민을 뜻하는 신조어)’이 대세였던 서울 청약시장에서도 미분양과 청약 미계약이 발생하고 있다. 이런 상황은 실수요자에게 주택공급을 확대해야 하는 정부에도 고민을 던진다.

업계는 부동산 혼란기에 청약 시스템이 ‘로또’와 ‘그림의 떡’ 사이를 오갈 수밖에 없기 때문에 정부가 청약 의존도를 낮추는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문한다.

공사비 인상 분위기는 시장 전반에 자리를 잡고 있다. 31일 조달청 나라장터에 따르면 서울 종로구 사직2구역 도시환경정비사업조합은 지난 21일 ‘시공자 선정 입찰 공고’를 발주하면서 예정 공사비로 1767억5796만6000원을 책정했다. 3.3㎡당 공사비로 환산하면 770만원 수준이다. 최근 자잿값 인상으로 공사비가 오르는 추세지만, 비강남권에서 700만원을 넘어선 것은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시장의 변화 조짐은 5월 초부터 있었다. 경기지역 공공재개발 사업지 중 관심이 높았던 경기도 성남시 신흥1구역의 시공사 선정은 한 차례 유찰됐다. 당초 DL이앤씨, GS건설, 코오롱글로벌, 계룡건설 등 4곳이 입찰에 참여할 것으로 보였지만, 모두 들어오지 않았다.

신흥1구역 시공사 선정 입찰공고에는 도급공사비를 3.3㎡당 495만원(부가가치세 제외) 이하로 제시하라고 명시됐다. 건설사들은 이 조건으로는 사업을 수주할 수 없다고 판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 강북구 재개발 단지에 청약 1순위 마감을 알리는 현수막이 걸려 있는 모습. 연합뉴스

애초에 공사비 인상 사태를 불렀던 변수들은 여전히 힘을 발휘하는 중이다. 원자잿값은 코로나19 팬데믹,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등으로 계속 치솟고 있다. 그러면서 건설업계가 정부에 물가 변동 배제 부당특약에 대한 규제를 요구하고 나섰다. 물가가 오르면 공사비는 자연히 오를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정부도 정비사업 조합원들의 부담이 늘면서 분양이 줄어드는 걸 막기 위해 분양가 규제를 차츰 줄여나갈 가능성이 크다.

분양 시장에는 벌써 움직임이 보인다. 청약홈에 따르면 서울 강북구 미아동 ‘한화포레나미아’(삼양사거리특별계획3구역 재개발)는 139가구를 대상으로 2일 무순위 청약을 받을 예정이다. 이 단지는 일반분양에서 328가구를 모집했고, 2347명이 신청해 평균 경쟁률 7.3대 1을 기록했다.

그러나 청약 당첨자의 42%가 계약을 포기했다. 예비 당첨자들까지 줄줄이 계약하지 않아 무순위 청약 물량이 나오게 됐다.

정부 입장에서는 청약 경쟁률이 심화해도 문제고, 청약 문턱이 높아져도 공급 계획에 차질을 빚게 된다.

서진형 공동주택포럼 공동대표(경인여대 교수)는 “분양가상한제 개선이 미세 조정으로 그치면 입지에 따른 청약 양극화 현상이 심화할 수밖에 없다. 로또 청약이 맞는지, 현실화가 맞는지 정답을 찾기 어려운 상황에서 채권입찰제(청약자 시세 차익을 일부 환수하는 제도) 도입을 통해 개발이익 환수하는 등의 다른 방법을 제시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택현 기자 alle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