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한라산 해발 270m 지점에 자리한 기상청 국가태풍센터 상황실은 한반도를 향하는 태풍을 365일 관측·추적하는 전초기지다. 북서태평양 감시구역 내에서 발생하는 모든 태풍을 감시하기 위해 평소 예보관 4명이 2인 2조로 돌아가며 24시간 근무한다. 태풍 발생 소식이 뜨면 비상상황에 돌입해 태풍센터 내의 모든 인력이 상황실로 집결, ‘전투’ 준비에 들어간다.
지난 25일 서귀포 국가태풍센터 상황실을 찾았을 때도 김동진 예보관은 상황실 벽면에 설치된 커다란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대기 흐름 등을 보여주는 위성 영상들이 화면 위를 번갈아 지나갔다. 태풍을 만드는 대기 흐름은 시시각각 변할 수 있어 영상에서 한시라도 눈을 돌리기 어렵다고 했다. 김 예보관은 “자연재해는 인간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기 때문에 한 명의 인명 피해라도 줄이기 위해 밤낮없이 긴장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한 번의 예보를 위해 이들은 5시간의 분석과 1시간의 회의를 거친다. 태풍이 본격적으로 발생하는 초여름이 특히 비상이다. 올해 한반도를 지나는 태풍은 예년과 비슷한 크기와 횟수로 전망되지만 기후변화 영향 등으로 갈수록 예측이 힘들다는 점이 불안 요소다. 함동주 센터장은 “올해는 변칙적인 최근 태풍들의 경향성이 유지돼 기록적인 극한 기상이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태풍 발생 빈도는 줄 수 있지만 강도가 세지고 한반도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져 피해가 커질 수 있다는 얘기다.
실제로 지난해 여름 태풍 ‘오마이스’(제12호)는 강풍 반경 110㎞로 크기는 ‘소형’으로 분류됐지만 폭우와 강풍을 동반하며 한반도에 9일간 머물렀다. 함 센터장은 “해수면 온도가 상승하면서 한반도에 영향을 미치는 북서태평양 태풍의 발생 장소도 점차 북쪽으로 이동하고 있다”며 “고위도에서 만들어진 태풍은 이동속도가 느리기 때문에 한반도에 오래 머물게 되고, 이로 인해 강우율(비가 내리는 강도)은 증가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예보관들은 대기와 대기가 만나 상승기류가 생성되는 지점, 구름의 모양과 진로, 열대 기후의 동향 등 여러 변수를 고려해 태풍을 예측한다. ‘베스트 트랙’을 생산하는 일도 주요 업무다. 과거 태풍이 발생했을 때 제대로 분석하지 못했던 정보까지 포함해 다시 시뮬레이션해 보다 정확한 진로를 예측해보는 것이다. 시험 ‘오답 노트’처럼 앞으로 닥칠 태풍에 보다 정교하게 대비하기 위한 작업이다.
국가태풍센터는 태풍 예보에 대한 중요성이 높아지면서 2008년 전담기구로 출범했다. 2002년 ‘루사’(사망·실종 246명), 2003년 ‘매미’(사망·실종 130명) 등을 반면교사 삼아 정확한 태풍 예보로 인명 피해를 줄이자는 취지다. 그 결과 태풍 예보의 정확성도 한층 높아졌다. 지난해 72시간 태풍 진로의 거리오차를 살펴보면 한국이 185㎞로 일본(225㎞)과 미국(240㎞)보다 오차가 적었다.
서귀포=박민지 기자 pm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