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형 노리는 범죄자 심리 겨냥… “38만원 ‘선처세트’ 팝니다”[이슈&탐사]

입력 2022-05-30 04:03 수정 2022-05-30 04:03
성범죄 피의자로 가장한 이슈&탐사팀 이동환 기자가 A심리상담센터에 심리상담 소견서 발급을 문의하고 있다. A센터를 비롯한 범죄자 전문 심리상담센터들은 소견서가 법정에서 선처를 받는 데 도움이 된다고 홍보한다. 이한형 기자


“제가 사귀다 헤어진 여자친구 사진을 SNS에 올렸거든요. 또 그거 때문에 싸우다가 새벽에 걔네 집까지 막 찾아갔더니 고소한다네요. (인터넷) 카페 같은 데 찾아보니까 여기에서 수료증 받으면 선처를 해준다고 해가지고….”

떨리는 목소리로 마른 침을 삼키며 말했다. 상대는 범죄를 저질러서 고소당한 이들이 수사·재판 과정에서 정상참작을 받을 수 있도록 심리상담 소견서를 써준다는 A심리상담센터였다. 주로 성범죄 피의자들이 찾는 곳으로 소문나 있었다. 딱 봐도 벌벌 떨고 있는 초짜 범죄자에게 수화기 너머 남자는 “입금해주시면 절차를 안내해드린다”고 말했다.

제가 무서워가지고

위장 취재를 위해 지난달 26일 이 업체 홈페이지에 들어가 상담을 신청했다. 15분도 안 돼 전화가 걸려왔다. “제가 무서워가지고 ….” 말끝마다 이 말을 반복하며 이것저것 묻는 기자에게 남자는 ‘돈도 안 내고 뭘 이렇게 꼬치꼬치 캐묻느냐’는 눈치였다. 멀쩡한 사람도 죄를 지으면 이렇게 지질해지는 건가 싶었다.

사진은 선처호소용 심리상담 수료증·소견서.

그들은 ‘선처세트’를 팔고 있었다. 심리상담 수료증, 상담 결과에 대한 의견서, 소감문 이렇게 3종이다. 이 세트는 가장 싼 게 38만5000원. 이건 ‘제작비’다. 발급비를 따로 받았다. 수료증 온라인 발급이 5만원, 원본을 등기우편으로 받으려면 2만원을 더 내야 했다. 의견서까지 가져가려면 5만원이 더 들었다. 소감문은 얼마인지 설명이 없었는데 역시나 5만원을 받는다면 추가금만 17만원이다. 그럼 다 합쳐 55만5000원이 든다.

기본 세트는 교육 기간을 7일로 잡는다. 기간이 길수록 가격은 올라간다. 죄질이 나쁜 사람일수록 상담 기간을 길게 잡을 것이다. 하지만 기간은 서류에 찍어주는 숫자일 뿐이었다. 실제로는 단 한 번, 5~10분만 통화하면 됐다.

A센터는 상담사 3명의 자격증을 홈페이지에 큼직하게 홍보하고 있었다. 셋 다 똑같은 세 가지 자격을 보유했다. 심리상담사, 가족심리상담사, 스피치지도사. 얼굴만 바꿔가며 합성한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발급기관은 무슨 평가원인데 이름에 속지 말자. 그냥 사설업체다. 슈퍼마켓 이름을 ‘청와대’라고 지은 거랑 같다. 자격증은 개당 8만원짜리였다.

그들 뒤엔 로펌이 있었다

신세계다 싶을 정도로 비슷한 업체가 많았다. 대부분 돈만 내면 딸 수 있는 심리상담사 자격증을 내걸고 영업 중이다. 50만~100만원을 내면 온라인이나 전화 상담만으로 맞춤형 소견서를 뚝딱 만들어준다. 이들 홈페이지나 블로그에는 각종 범죄 피의자들이 법정에서 선처를 받을 수 있게 해줬다는 홍보글이 영웅담처럼 내걸려 있다.

일부 업체는 법무법인(로펌)과 연결돼 있었다. 성범죄 관련 정보 공유 커뮤니티임을 표방한 모 인터넷 카페는 B심리상담소에 전용 게시판을 내주고 있었다. 이걸 ‘입점’이라고 표현했다. 이 카페 대표가 로펌을 운영하는 현직 변호사다. 1인 상담사인 B상담소 대표는 카페 운영진으로도 올라 있었다.

상담비는 회당 10만원. 오후 7시 이후엔 1만원이 더 붙었다. 권장 상담횟수는 5회다. 상담소 측은 이걸 꼭 다 받을 필요는 없다고 설명했지만 소견서를 받으려면 결국 5회분 비용 50만원을 결제해야 했다.

B상담소 대표는 대학에서 상담심리학을 전공했고 심리상담사 등 네 가지 관련 민간자격을 갖고 있다고 소개했다. 발급 기관은 ‘한국자격검정진흥원’이라고 했다. 이 업체는 현재 행방을 알 수 없다.

상담소 대표는 한국심리학회와 한국상담심리학회 준회원이라는 이력도 기재했다. 이들 학회 준회원 자격은 대학에서 관련 전공을 이수한 뒤 신청만 하면 주어진다. 전공자인 거지 전문가임을 뒷받침하지는 않는다는 얘기다.

성범죄 정보 카페 대표 운영자인 변호사는 “심리상담 자격증이 있고 법적으로 문제가 안 되는 분이라 입점하겠다고 하니 굳이 저희가 안 된다고 할 이유는 없었던 걸로 안다”며 “그쪽에서 정확히 어떤 상담을 어떤 식으로 하는지까지는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는 “굉장히 소액의 광고료를 받고 있다”고 했다.

기자를 혼낸 상담사

범죄자를 전문으로 상대한다는 C심리상담센터에도 선처용 심리상담을 문의했었다. 이곳도 코로나19 핑계를 대며 비대면으로만 진행하려 했다. “근데 이게 비대면이라고 해서 요식행위가 이뤄지는 건 아니고 처음에 심리검사지랑 성장환경에 대한 조사를 저희가 해요. 그거 회신해주시면 면담 질문지를 1주일에 한 번씩 보내드리고….” 다 끝나면 수료증을 발급해준다. ‘범죄심리의견 및 재범위험평가서’라는 것도 써준다. A센터를 언급했더니 “거긴 그냥 돈 내면 의견서 한 장 해주더라”며 “거기 갔다 저희한테 오시는 분 되게 많다”고 강조했다.

C센터 ‘상품’은 두 가지다. 40만원짜리는 심리 검사 후 교육 동영상을 시청하는 것으로 끝난다. 상담까지 진행하는 건 100만원짜리다. 선처를 받으려면 상담까지 받아야 하느냐고 묻자 C센터 대표는 “아무래도 저희 (소견서를 가지고) 협력 변호사님들이 선처를 많이 끌어내신다”고 답했다. 결과적으로는 좋은 결과를 냈다는 뉘앙스였다.

대표는 알 만한 로펌 소속 변호사들 이름을 대며 함께 일한다고 설명했다. 그중엔 성범죄 사건 변호로 유명한 로펌도 끼어 있었다. 홈페이지엔 또 다른 법무법인 3곳과 업무협약을 맺고 있다고 안내했다. 본업이 따로 있는 그가 부업으로 심리상담센터까지 차린 배경에도 변호사들이 등장한다. 온라인 대학원에서 상담 관련 석사 학위를 딴 뒤 우연히 지인에게 써준 의견서가 입소문을 탔고 이후 변호사들 소개를 받은 피의자들이 계속 찾아왔다고 한다.

상담 중에 “억울하다”고 했다가 혼이 났다. 그는 “저희는 돈 준다고 양형자료를 만들어주는 상담센터가 아니다. 선처를 받고자 하면 그냥 A센터에 가는 게 낫다”고 말했다. 홈페이지엔 ‘우리 센터의 범죄심리의견서는 양형 참고자료로 법원과 검찰에 제출되어 선처를 받을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있다’고 광고하고 있었다.

‘마케팅 도구’ 된 판결문

업체들은 심리상담 이력이 피고인에게 유리하게 인정된 판결을 들어 “이거 봐라, 효과가 있다”고 홍보한다. 실제로 그런 문구를 판결문에서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스스로 심리상담치료와 성폭력 예방교육을 받으며 재범하지 않을 것을 다짐하고 있고 (중략) 모든 양형조건을 종합하면 원심의 형은 다소 무거워서 부당하다고 인정된다.” “당심에 이르러 잘못된 성적 욕구를 치료하기 위해 심리상담센터에 방문하여 상담하는 등 재범하지 않기 위해 노력한 점 ….”


취재팀은 지난해 1월부터 지난달까지 공개된 성범죄 관련 판결문 중 ‘심리상담’이 언급된 59건을 분석했다. 적어도 문구상으로는 심리상담 이력이 재범 방지나 갱생 노력으로 평가되고 있었다. 59건 중 피고인 정상참작용으로 심리상담이 제시된 사례는 36건이었다. 재판부는 그중 86.1%인 31건에서 심리상담을 양형에 유리한 정상으로 기술했다. 혐의는 몰카(11건) 음란물(9건) 추행(5건) 공연음란(3건) 미성년자 강간(3건) 등이었다.

한 남자는 미성년자인 친딸에게 몹쓸 짓을 해 1심에서 징역 10년을 받았는데 2심에서 7년으로 깎였다. 판결문엔 “심리상담을 받는 등 문제의 해결을 위한 노력을 하고 있었던 점 등은 피고인에게 유리한 정상”이라는 설명이 나온다. 이런 사례만 놓고 보면 ‘심리상담’이라 쓰고 ‘면죄부’라 읽어야 할 것 같다.

심리상담이라는 지푸라기

심리상담이 감형에 도움이 된다는 업체들 주장에 대해 판사도 검사도 변호사도 터무니없어했다. 심리상담 여부나 결과는 애초 유무죄를 가르거나 형량을 정하는 기준이 아니라고 공통적으로 설명했다. 재판부가 중요하게 판단하는 기준은 범행을 인정하고 진심으로 뉘우치는지, 초범인지 재범인지, 피해를 충분히 배상했는지(합의)라고 한다.

한 고등법원 부장판사는 “양형기준에는 심리상담 여부 같은 게 전혀 없다”며 “그분들이 개발하셨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그는 “용서는 피해자의 권리인데 ‘가해자가 이 정도 했으면 할 만큼 했다’ 하는 정서가 우리 사회 저변에 있지 않으냐”며 “(심리상담 소견서 장사도) 그런 걸 이용한 마케팅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지적했다.

임지훈 임지훈법률사무소 변호사는 “피의자나 피고인의 절박한 심정을 이용하는 마케팅이라고 본다”며 “법원에선 의사 소견서가 아니면 인정도 안 해주는데 단순 심리상담 정도를 유리한 양형요소로 내세우긴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심리상담 이력이) 양형에 영향을 주느냐 하면 저는 지푸라기라고 생각한다”고 잘라 말했다.

한 검찰 관계자는 “자백 사건은 다툴 만한 쟁점이 없어서 사실 변호사도 필요 없다. 판사도 심리상담 소견서를 내면 읽어보지도 않을 것”이라며 “심리상담을 안내하는 변호사가 있다면 피의자의 절박한 심정을 낚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억울한 자, 당당한 자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피의자에게 심리상담을 하고 소견서를 파는 건 비윤리적인 행위”라며 “지금 성폭력 전과자가 피해자를 상담하는 지경인데 가해자들을 상대로 (선처용 심리상담) 영업을 활발하게 한다는 건 더 악성”이라고 비판했다. 이 교수는 “가짜 상담을 제재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신분을 밝힌 취재진이 소견서 장사의 문제점을 지적하자 당사자들은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C센터 대표는 자신은 제대로 된 심리상담을 해왔다며 억울해 했다. “A센터 같은 곳들과는 달리 저희는 보통 상담기록이 40페이지가 나가요. 읽어보는 판사님도 계시고 정말 피고인이 많이 반성하는 게 느껴져서 마지막으로 한 번 더 기회 주신 경우도 많죠. 피의자 부모님들이나 청소년 피의자들이 고맙다고 말씀 많이 하셔서 여기까지 올 수 있었어요.”

A센터 대표인지 직원인지 알 수 없는 남자는 당당했다. “양형에 도움 안 된다는 게 말이 안 돼요. 의뢰인들이 전해주신 판결문에 ‘심리치료 병행하고 있고 재발 방지 교육을 받고 있다’는 내용이 명시된 사례들이 충분히 있거든요.” 이들이 착각하는 거라면 아무래도 판사들이 판결문 쓰는 방식을 바꿔야 할 것 같다.

4화에선 합법과 불법 사이를 줄타기하는 자칭 범죄심리상담센터들의 실체를 추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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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탐사팀 강창욱 이동환 정진영 박장군 기자 issu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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