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휴일] 밑

입력 2022-05-26 19:35


모두 하늘을 보기 위해 물구나무서는 밤
너의 엄마가 되어주지 못해서
너의 딸이 되어주지 못해서
이곳은 여전히 아득하고 아득한
밑의 밑

아침이면 누군가 실려 가고 실려 오고
응급차 소리는 이제 도시 곳곳의 노선이 되어버렸지
네가 먹던 알약들이 쏟아지는 밤

나는 안녕해
네 슬픔의 밑바닥을 천천히 답사하는 중이야
밤 고양이들과 함께 도시의 빈 병으로 나뒹구는
나는 너무 안녕해

노란 알약이 흩날리는 꿈속에서 꾸는 꿈
생의 밑이 다 빠져나가고
중력을 놓친 것들
물구나무서면 밑은 하늘이 되겠지
그 하늘에 줄줄 새는 것들 모두 돌려보내면
너는 쏟아지겠지
햇빛을 발로 툭툭 하던 내가 되겠지

-이설야 시집 ‘내 얼굴이 도착하지 않았다’ 중

사랑하는 누군가가 병을 앓다 세상을 떠난 모양이다. “나는 안녕해/ 네 슬픔의 밑바닥을 천천히 답사하는 중이야”라고 얘기하지만 “생의 밑이 다 빠져나가고” “아득하고 아득”하다. “밑의 밑”에서 시인은 생각한다. “물구나무서면 밑은 하늘이 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