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 연속 한국시리즈 진출에 빛나는 두산 베어스가 추락하고 있다. ‘화수분’과 ‘잇몸 야구’로 상징되는 팀 컬러에도 헐거워진 선수층을 극복하지 못하며 심상찮은 위기에 직면했다.
두산은 매년 핵심 선수들을 FA로 내보내면서도 우승 경쟁을 펼쳐 왔다. 올해도 골든글러브 에이스 아리엘 미란다와 중심타자 양석환이 부상으로 이탈했지만 시즌 초반 상위권을 유지했다. 리드오프 자리에 안권수, 필승조에 안착한 신예 정철원 등이 새로운 주역으로 자리 잡았고 이길 경기를 확실히 잡는 김태형 감독의 전략과 용병술도 여전했다.
하지만 최근 10경기에서 승리가 고작 한 번뿐이다. 그간 벌어놓은 승차를 야금야금 까먹으면서 열흘 남짓 동안 2위에서 7위로 곤두박질쳤고 5할 승률마저 무너졌다.
본격적인 하락세의 기점은 18일 선두 SSG 랜더스와 홈 경기였다. 연장 11회 말 조수행의 끝내기 상황, 누상에 있던 주자들의 본헤드 플레이로 좌전 안타가 병살타로 바뀌며 이닝이 끝났고 결국 경기를 내줬다. 이후 뭔가 홀린 듯 경기력과 게임 플랜이 동시에 무너지기 시작했다.
이번 주 한화 이글스와 주중 3연전은 두산으로선 순위 싸움의 분수령이었다. 하지만 최악의 경기력으로 첫 두 경기를 연속으로 내줬다. 특히 25일 경기는 선발부터 불펜, 수비, 타격 뭐 하나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총체적 난국 속에 14대 1로 대패했다. 두산이 10점 차 이상으로 패한 건 지난해 5월 이후 근 1년 만이다. 짜임새 있는 야구로 ‘잘 지는 법’을 알고 있던 강팀 두산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간 고군분투한 국내 선발들이 힘에 부치는 데다 각종 지표를 보면 타격은 더 심각하다. 팀타율은 0.242로 8위, 팀 OPS는 0.637로 10위다. 규정타석을 채운 3할 타자가 주전 라인업에 없다. 장타력 실종은 더 큰 문제다. 홈런 1위 박병호가 16개를 쳤는데 두산 팀 전체 홈런은 고작 15개다.
공격의 흐름을 끊어 먹는 병살 양산도 고민거리다. 외인 타자 호세 미구엘 페르난데스가 그 중심에 있다. 시즌 44경기에서 혼자 병살 16개를 쳐 압도적 1위다. 2위 황대인이 8개, 키움 히어로즈의 팀 병살 개수가 21개에 불과하다. 이대로 100경기를 더 치른다면 페르난데스 본인이 2020년 세운 KBO 단일 시즌 최다 병살 기록 26개를 넘어 메이저리그(MLB) 기록인 36개(1984년 짐 라이스)도 거뜬히 넘길 세계 신기록 페이스다.
일단 5월을 버텨내야 한다. 미란다 김인태 박치국의 1군 복귀 등 6월 반등을 기대케 하는 요소는 분명 있다. 타선에서는 4번 김재환과 돌아온 양석환의 클린업이 장타 생산으로 무게감을 되찾는 게 급선무다. 최근 보여준 심란한 경기력이 개선되지 않는다면 당장 중위권 복귀보다 8위 KT와 순위 맞바꿈을 걱정해야 하는 위기상황이다.
정건희 기자 moderat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