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정부는 ‘노동의 가치가 존중받는 사회’를 표방한다. 문재인정부가 내세웠던 ‘노동 존중 사회’와 유사해 보이지만 정책 내용은 확연히 다르다. 우선 일자리 창출을 민간 주도로 전환하고, 이를 위해 노동 시장을 유연화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특히 근로시간·임금체계 유연화가 핵심 정책으로 꼽힌다. 주52시간제로 대표되는 경직된 노동 시스템으로는 초고령화와 저출산, 디지털 전환 등으로 급변하는 노동 환경에 대응하기 어렵다는 게 새 정부 판단이다.
우선 선택적 근로시간제부터 손볼 계획이다. 선택근로제는 정해진 기간의 주 평균 노동시간이 52시간을 넘어가지 않으면 출퇴근 시간을 자유롭게 정하는 제도다. 현행 선택근로제 정산기간은 1개월이고 ‘신상품 또는 신기술의 업무개발 업무’에 한해 3개월까지 허용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후보 시절부터 선택근로제를 1년까지 늘리겠다고 공약했고, 국정과제에도 이를 반영했다.
정부는 여기에 더해 추가 근로시간을 휴가로 적립하는 ‘근로시간 저축계좌제’, 스타트업·전문직 근로시간 규제완화 방안 등을 포함한 근로기준법 개정도 목표로 하고 있다. 개정안 제출 시점은 내년 상반기로 잡았다. 그러나 더불어민주당이 국회 의석 과반을 차지하고 있는 지형에서 법 통과가 쉽지 않다는 전망이 많다. 노동계는 노동계대로 주52시간제가 무력화돼 과로사회로 역행할 거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임금체계 유연화는 직무·성과 중심의 임금체계 확산을 뜻한다. 새 정부는 이를 ‘세대 상생형 임금체계’라고 이름 붙였다. 호봉제와 같은 연공식 임금체계는 근무 연수에 따라서 임금과 직급이 상승하는 구조다. 이런 구조는 고령층에 조기퇴직 압박 수단으로 작용하고, 청년 고용 여력을 감소시키는 등 부작용이 크다는 분석이 꾸준히 제기됐다. 하지만 이미 박근혜정부에서 성과에 따라 급여에 차등을 두는 ‘공공기관 성과연봉제’를 도입했다가 실패한 전례가 있어 민간은 물론 공공부문도 임금체계 전환 작업이 지난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현행 근로기준법은 취업규칙 변경 시 ‘과반수 노조’나 ‘노동자 과반수’의 의견을 듣도록 규정한다. 정부는 직무·직군·직급별로 근로자 대표가 사용자와 서면 합의해 임금체계를 결정할 수 있도록 절차를 마련하고, 필요시 법 개정을 병행할 계획이다. 이에 맞서 노동계는 근로자 대표를 부문별로 쪼개는 것은 노조의 권한을 분산시키고 힘을 약화시키는 정책이라고 비판한다.
노사협의회를 강화한다는 새 정부 방식 역시 노동계의 거센 저항을 불러올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는 노사협의회 근로자위원을 근로자 직접투표로 선출하도록 제도를 개선하고, 일정 규모 이상 기업의 공동노사협의회 설치·운영 등을 지원할 계획이다. 그러나 이에 대해 양대 노총 모두 부정적이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은 “노동정책 유연화를 쉽게 도입하기 위해 노사협의회를 활용하겠다는 의도”라고 해석했고,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은 “새 정부가 가진 노조 혐오, 반노조 정서가 투영됐다”고 날을 세웠다.
새 정부는 중대재해처벌법의 불확실성을 해소해 달라는 경영계 요구를 수용해 법령 개정도 추진한다. 개정 수위에 따라 노사 갈등이 폭발하는 뇌관이 될 수도 있다. 이외에 공정한 채용 기회를 보장하는 ‘공정채용법’ 제정, 노무제공자의 권리 보장 입법화 등도 예고돼 있다.
박상은 기자 pse0212@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