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장군의 심리상담서비스입니다.’ 이 한 줄 소개를 단 지 4시간 만에 30대 회사원이 도움을 요청해 왔다. 그는 “회사 사람들 외엔 만나지 않아 외로운 기분이 든다”고 했다. 얼마 뒤 다른 30대 청년도 대인관계에 어려움을 느낀다며 도움을 청했다. 이들은 제대로 된 자격증도 없는 ‘가짜 심리상담사’를 전문가로만 믿고 손을 내밀었다.
취재팀은 지난달 26일부터 한 달 가까이 심리상담 시장에 잠입해 전문가 행세를 하며 위장 취재를 했다. 각 분야 전문가를 연결해주는 한 온라인 플랫폼에서 심리상담사로 활동했다. 이 플랫폼은 누구나 ‘고수’를 자처할 수 있었다. 사업자등록증과 자격증 등을 인증할 때마다 등급이 높아졌지만 인증 없이도 전문가 행세는 가능했다. 최근 급증한 심리상담 수요는 이곳으로도 몰리고 있었다. 직접 상담소를 방문하는 것보다 간편하고 가격도 저렴하다는 점 등이 사람들을 끌어들였다. 문턱이 낮은 만큼 누구나 전문가인 척할 수 있었고, 누구라도 엉터리 심리상담에 당할 수 있었다.
어서 오세요, 엉터리 상담소에
연일 SOS가 이어졌다. 성도착증, 자살충동, 조울증, 피해망상, 게임중독, 마약중독, 알코올중독, 불면증, 우울증으로 인한 과호흡…. 듣기만 해도 심각했다. 처음엔 자격증도 없었다. 2시간 만에 딴 심리상담사 1급 자격증을 아직 받지 못한 때였다(국민일보 5월 25일자 1·4·5면). 그런데도 1주일 사이에만 도움을 구해온 사람이 22명이다.
자격증을 올리자 상담 요청이 3배 가까이 늘었다. 지난 19일 오전까지 상담을 요청한 사람은 모두 187명이었다. 증세는 우울증이 68명으로 가장 많았다. 병원 진단을 받거나 한 중증 환자도 9명이 포함돼 있었다. 스트레스를 비롯한 불안 32명, 인간관계에 대한 고민 14명, 성·알코올·게임·마약 등에 빠진 중독 13명 순으로 뒤를 이었다.
취재팀은 내부 회의와 전문가 자문 등을 통해 상담윤리, 취재윤리를 훼손하지 않는 접근 방식을 고민했다. 고통을 호소하는 이들을 상대로 엉터리 상담을 할 수는 없었다. 내담자와 연락이 닿으면 가장 먼저 취재 중인 사실을 밝히고 동의를 받은 경우에만 추가 인터뷰를 진행했다. 이후 등장하는 모든 내담자 이름은 가명이다. 또 한국상담학회 협조를 받아 내담자 본인이 원하는 경우 실력이 검증된 전문가들에게 적절한 상담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했다.
엉터리 자격에 낚인 조울증 20대
여러 증상을 동시에 겪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정신질환을 앓는다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1년차 회사원 박현수(28)씨도 그중 하나다. 박씨는 6년 전 병원에서 조울증 진단을 받았다. 지금도 약물치료 중이다. 기분이 지나치게 들뜨는 조증에서 벼랑 끝에 몰린 것 같은 우울증으로 뒤집힐 때면 극단적 선택을 생각하기도 한다.
“우울증이 오면 동료들한테 들키지 않고 피해도 안 주려고 저 자신을 괴롭히게 돼요. (맡은 일을) 어떻게든 꾸역꾸역 해내려고 하는데 그때마다 마음이 너무 힘들고 업무 성과도 떨어지죠.” 그는 기자와 통화하는 중에도 감정 기복을 보였다. 차분했던 목소리가 어떤 대목에서 갑자기 고조될 때 그 의미를 짐작할 수 없는 기자는 조마조마했다.
그는 기자가 전화를 걸어 정체를 밝히기 전까지 자격을 의심하지 않았다고 한다. 시간당 2만원이라는 헐값 견적이 의아하긴 했지만 자격증이 엉터리일 거라곤 생각지 못했다고 한다. 자격증 장사가 성행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상담받을수록 불신만 커졌다
게임중독에서 벗어나고 싶다며 도움을 청한 사람은 두 아이의 아빠 이재민(42)씨였다. 이씨는 길게는 하루 10시간씩 게임에 빠져 산다. 퇴근 후 집에 와서는 게임을 하다 오전 3~4시에야 잠자리에 들고 7시쯤 일어나 다시 출근한다. 이런 식의 삶을 10년째 반복 중인 그는 중증 게임중독자였다. 직장 스트레스가 게임중독을 부추기고, 게임중독이 가족과의 다툼을 부르고, 그 스트레스에 다시 게임에 빠지는 악순환. 게임중독은 누구보다도 아내와의 갈등을 키웠다. 화를 이기지 못한 아내가 컴퓨터를 부수고 전원 코드를 끊어버린 적까지 있었다.
이씨는 기자를 만난 플랫폼에서만 세 차례 자칭 심리상담사를 만났다. 상담을 거듭할수록 상담사에 대한 불신이 커졌다고 한다. 그들은 6만~7만원씩 받아가면서도 코로나19 핑계를 대며 처음부터 비대면 상담을 하려 했다. 상담도 단순히 얘기를 들어주는 수준에 그쳤다. 그 ‘영양가 없던’ 상담사 대부분이 기자처럼 민간자격증을 가진 이들이었다.
엄마 몰래 상담 청한 여학생도
“우울증, 무기력증이 있어요. 감정에 제대로 공감을 못하겠어요.” 한 10대 소녀가 심리상담을 요청해 왔다. 프로필 사진은 어둠 속에서 교복 차림으로 의자에 앉아 고개를 푹 숙인 학생을 그린 장면이었다. 전화를 걸자 성인 여성이 받았다. 소녀의 어머니인 듯했다. 어리둥절해 하는 그가 “잠시만요”라고 말한 뒤 멀어진 수화기 너머에서 “심리상담 요청한 데 있어?”라고 묻는 소리가 들렸다. 앳된 목소리의 소녀가 힘없이 대답했다. 내용은 들리지 않았다. 여성은 “문의해주신 건 감사하지만 정신의학과에 요청해 치료 절차를 밟고 있다”며 정중히 인터뷰를 거절했다.
한 30대 여성은 낮은 자존감과 불안, 조울감, 트라우마, 공황장애 등을 호소하며 도움을 구하고 있었다. 처음으로 심리상담이란 걸 받아보려던 참이었다. 인터뷰를 완곡히 거절한 그는 전화를 끊기 전 “혹시 그러면 이렇게 엉터리 심리상담사가 많다고 하면 올바른 사람들은 어떻게 만날 수 있는 거냐”고 물었다. 2시간쯤 뒤 그는 프로필명을 바꾸고 플랫폼에서 사라졌다. 그의 정보를 클릭하자 ‘활동하지 않는 고객’이라는 안내가 떴다.
삼성 공채가 상담이랑 뭔 상관
심리상담사로 등록한 이들 중 기자만 엉터리가 아니었다. 무자격자나 자격 미달자로 의심되는 사례가 쉽게 눈에 띄었다. 역시 다수가 민간자격업체에서 받은 자격증이나 수료증을 내걸었다. 발급기관명은 죄다 ‘한국’으로 시작해 ‘협회’나 ‘진흥원’으로 끝났지만 어느 곳도 정부 공인기관이 아니다. 이름만 흉내낸 사설업체에 불과하다.
개중에는 ‘삼성 공채 출신’처럼 엉뚱한 이력을 늘어놓은 경우도 있었다. 대기업 입사 경력이 상담이랑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그는 기독교인 고객을 노린 건지 ‘교회 부부학교’ 수료 사실도 앞세웠다. 한 심리상담사(자칭)는 모 학회가 인증한 상담가 자격증을 보유했다고 소개하며 “128시간의 임상 실습으로 타학회에 비해 높은 자격 규정을 가지고 있는 인준된 자격증”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128시간은 수련이라고 부르기엔 턱없이 짧은 시간이라고 전문가들은 평가했다. 이 상담사는 “(상담을) 카페에서 할 경우 상담가의 음료는 내담자분이 부담하셔야 한다”고 덧붙였다.
사이비 상담사에게 당했습니다
‘심리상담 X파일’ 1화 보도 직후 경기도 고양시에 산다는 40대 여성 K씨는 마침 취재팀이 심리상담사인 척 활동한 온라인 플랫폼에서 피해를 당했다고 전해 왔다. 그가 온라인에서 심리상담사를 찾게 된 이유는 역시 비용이었다. 일반 상담센터 상담료는 50분에 10만원이 넘었다. 온라인에서 상담사를 찾아 시간당 4만원을 내고 몇 차례 상담을 받았다. 이씨 성을 가진 상담사는 “원래 10만원인데 할인해주는 것”이라며 전화로 비대면 상담을 했다. 엉터리들의 패턴이다.
K씨는 “나중에 보니 (국민일보) 기사에 나오는 그런 엉터리 자격증으로 쉽게 돈을 버는 사이비였다”고 말했다. 그 ‘사이비’는 K씨가 더 이상 상담을 받지 않겠다고 하자 화를 내며 “내 말을 안 들어서 불행해질 것”이라고 악담을 퍼부었다고 한다. 상담사는 뻔뻔하기까지 했다. K씨에게 “난 사업자등록증도 없이 집에서 아주 알차게 돈을 벌고 있다”고 자기 입으로 말했다고 한다. 그는 이 온라인 플랫폼 외에도 비슷한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에서 종횡무진 활동하는 사실을 자랑거리로 떠벌렸다. “나한테 돈 내고 코칭을 받아서 앱에서 상담하며 돈을 벌라”고 부추기기도 했다.
K씨는 “심적 고통으로 취약성을 안은 채 절실한 마음으로 상담사를 찾지만 되려 사이비 상담사들이 벼랑 끝에 있는 사람을 낭떠러지로 밀어뜨리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마음의 골든타임 뺏는 엉터리 상담
엉터리 상담의 피해는 내담자가 전부 떠안는다. 돈은 돈대로 쓰고 마음은 마음대로 다치는 꼴이다. 심리상담을 돈벌이로 삼는 이들은 잃을 게 없다. 한 번 상담으로 나아진 게 없다고 하면 두 번, 세 번 권하고 돈을 더 받아가면 된다. 그러고도 효과가 없으면 “내 능력 밖”이라며 발뺌하거나 “당신 탓”이라고 상처를 준다. 이런 경험을 할수록 상담을 불신하고 더 이상 찾지 않게 된다. 부실 상담이 잘못도 없는 내담자를 ‘마음의 골방’에 가둬버리는 것이다.
조수연 호시담심리상담센터 대표는 “잘못된 상담 경험을 한 사람은 상담이라는 선택지를 영영 지워버림으로써 심리치료의 기회를 잃을 수 있다”며 “잘못된 진단을 내리고 (내담자에게 문제가 있는 것처럼) 낙인을 찍는 것도 엉터리 상담의 피해”라고 지적했다. 그는 “상담자는 진단하지 않는다. 진단은 정신과의 영역”이라고 선을 그었다.
심리치료에도 ‘골든타임’이 있다. 조 대표는 “심리적 골든타임을 놓치면 치명적인 손실이 일어날 수 있다”며 “그게 목숨일 수 있고, 관계일 수도 있고, 직업이나 건강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당신의 치유를 기도하며
취재팀은 내담자 중 증상이 심각하다고 판단한 이들에게 전문 심리상담을 제안했다. 선택은 본인에게 맡겼다. 조울증을 앓는 회사원 박씨가 응했다. 상담을 맡아줄 기관은 상담학회가 수소문했다. 상담 횟수는 15회로 정했다. 모두 무료로 진행된다. 학회와 기관이 비용을 부담한다. 박씨는 현재 자택 인근 심리상담센터에서 막 치료를 시작했다.
우리만 몰랐던 ‘상담시장 X파일’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기자가 딴 수준의 심리상담사 자격은 성범죄 피의자들에게 정상참작용 소견서 따위를 써주고 돈을 버는 데에도 쓰이고 있었다. 3화에선 그들을 발가벗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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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탐사팀 강창욱 이동환 정진영 박장군 기자 issu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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