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을새김] 또 거리두기를 하게 된다면

입력 2022-05-24 04:02

지난 금요일 저녁 서울 잠실야구장은 활기가 넘쳤다. 거리두기가 해제된 상황에서의 야구경기 관람은 근 3년 만이었다. 응원팀 타자가 홈런을 칠 때마다, 야수가 호수비를 보여줄 때마다, 투수가 상대팀 선수를 삼진으로 돌려세울 때마다 같은 팀을 응원하는 옆자리 관중과 하이파이브를 했다. 마스크 속 함성만으로도 경기장을 달아오르게 하기엔 충분했다.

경기 후 잠실새내역 인근도 북적였다. 골목 양쪽 음식점과 주점에선 왁자지껄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마스크를 쓴 이들이 많았지만 동료들과 대화를 나누는 손님 얼굴에서도, 호출 벨 소리가 울릴 때마다 달려가는 사장님 얼굴에서도 웃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래, 이런 거였다, 우리네 일상은.

야구를 본 후면 꼭 찾는, 1년에 두세 번씩 들르는 가게 사장님은 환한 얼굴로 맞아줬다. “가게가 꽉 찼네요. 돈 좀 버시겠어요”라는 농담 섞인 덕담에 그는 “한 1년 잘 버티면 빚은 다 갚을 수 있지 않을까”라며 웃었다. 지난겨울 야구와 상관없는 시기에 찾았을 때 가게 전등을 모두 끄면서 그때까지 가게에 있던 손님들을 배웅하던 눈빛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2년의 거리두기를 끝낸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오래전 기억처럼 느껴졌다.

그럴 일이 없으면 더 좋겠지만, 만약 다시 지난 2년 같은 상황을 맞닥뜨리게 된다면 앞으로의 거리두기는 예전과는 달랐으면 한다는 얘기가 자연스레 흘러나왔다. 모임 규모를 제한하더라도 자영업 영업제한만큼은 좀 더 융통성 있게 했으면 좋겠다며 한마디씩 했다. 모든 자영업의 영업 개시 및 종료 시간을 일률적으로 정하지 말고 전체 영업시간에만 제한을 두는 식으로 했으면 좋겠다는 아이디어도 나왔다. 전체 영업시간을 8시간으로 제한한다면 해장국집은 오전 6시부터 오후 2시까지 영업할 수 있고, 일반 식당은 낮 12시부터 오후 8시까지 영업할 수 있고, 호프집이나 주점은 오후 5시부터 새벽 1시까지 영업할 수 있게 된다.

이곳저곳을 오가다 테이블에서 나오는 얘기를 듣던 사장님은 짬을 내 앉더니 “좋은 아이디어”라고 맞장구를 쳤다. “만약 그런 식으로 전체 영업시간만 제한했다면 문 닫는 가게는 훨씬 줄었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지금처럼 자영업자들에게 지원금을 주기 위해 천문학적 규모의 예산이 지출되는 일은 없었을 것이라는 얘기도 덧붙였다.

인원 제한을 다시 하게 되더라도 최소 4인 정도로 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연인 관계가 아니고서야 일상에서 단둘이 따로 만날 일은 많지 않고, 2인 모임만으로는 일반적인 사회생활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모임 자체가 줄어드는 것을 반기는 이들도 있겠지만 모임 자체가 죄악시되고 모임이 불가능해진 상황을 힘겨워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자칫 이렇게 쌓인 개개인의 스트레스가 사회 전체의 비용으로 돌아올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한 이는 코로나 시기 우울증 유병률이 악화됐다는 질병관리청의 국민건강영양조사 결과를 근거로 제시했다.

선제적이고 강력한 거리두기가 전 세계적으로 확산된 코로나 감염병 상황에서 치명률을 줄이는 데 큰 역할을 했다는 것은 동의한다. 하지만 그로 인한 부작용이 컸다는 점도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특히 극한까지 치달았던 자영업자들의 고통에 대해서는 우리 사회의 깊은 숙의가 있어야 한다. 지원금 규모만 고민할 것이 아니라 감염병 확산 시기 자영업자들이 겪은 고통과 비슷한 상황이 벌어졌을 때 그들의 고통을 줄이기 위해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 험난한 미래를 대비하는 일은 일상의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는 시기에 미리 시작해야 한다.

정승훈 디지털뉴스센터장 sh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