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날 삼성전자, 마지막날 현대차… 바이든, 한국 기업과 기술 동맹 과시

입력 2022-05-23 04:01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22일 오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방한 숙소인 서울 용산구 그랜드 하얏트 호텔에서 열린 면담 자리에서 영어 연설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방한 일정은 지난 20일 삼성전자 평택캠퍼스를 찾는 것으로 시작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바이든 대통령과 윤석열 대통령을 직접 안내하며 세계 최대 규모의 반도체 공장을 소개했다. 마지막 날인 22일에 바이든 대통령은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과 면담을 가졌다. 면담이 끝나자 정 회장은 미국에 전기차 전용 공장, 배터리셀 공장 구축 등으로 105억 달러를 투자한다고 발표했다.

빠듯한 일정 가운데 두 회사와 두 경영인에게 초점을 맞춘 건 많은 의미를 담고 있다. 우선 코로나19, 공급망 붕괴가 촉발한 경제·산업 위기를 ‘경제·안보·기술 동맹’으로 극복하겠다는 이해관계가 맞닿는다. 미국과 한국은 여러 미래 핵심산업에서 손을 잡아야 하는 사이다. 특히 반도체가 그렇다. 미국은 반도체 설계에서 세계 최고의 기술력을 갖췄지만 생산은 한국과 대만 등에 의존하고 있다.

전기차 배터리도 마찬가지다. 미국 자동차업계 빅3 가운데 GM은 LG에너지솔루션, 포드는 SK온, 스텔란티스는 삼성SDI와 합작해 전기차 배터리 생산을 추진하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전기차 시대로의 준비가 부족했던 미국 완성차 업체에 한국 배터리 기업은 꼭 필요한 존재다. 한국 입장에선 북미 시장을 선점할 기회가 생긴 것”이라고 말했다.

바이든 대통령의 ‘바이 아메리칸(Buy American) 정책’은 한국 기업의 미국 투자·진출에 속도를 붙이고 있다. 미국은 자국에서 생산한 제품에 각종 혜택을 준다. 미국산으로 인정받으려면 미국에서 생산한 부품의 비율이 전체에서 55% 이상을 차지해야 한다. 오는 10월부터 이 비율은 60%, 2024년에 65%, 2029년에는 75%로 오른다. 미국에 생산거점을 구축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삼성전자는 조만간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시에 170억 달러를 투자한 파운드리 공장을 착공한다. 현대차는 55억 달러를 들여 조지아주에 첫 전기차 전용 공장과 배터리셀 공장을 짓는다.

여기에다 글로벌 공급망 붕괴, 미국 중심의 공급망 구축이 양국을 더 끌어당기고 있다. 미국은 다자간 협의체인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F)’를 기반으로 ‘공급망 사슬’을 재편하려고 한다. 디지털·공급망·청정에너지 등의 새로운 통상 이슈에 공동 대응하는 포괄적 경제협력구상체다. IPEF의 핵심은 반도체·배터리 등에서 ‘공급망 동맹’을 완성하는 것이다. 미국은 공급망 사슬의 중요 고리로 한국을 지목했고, 한국은 미국 주도의 공급망에 올라타려고 한다.

또한 미국은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중국을 견제하려는 의도를 짙게 내보이고 있다. 반도체, 전기차, 배터리, 인공지능(AI), 로봇 등의 미래 산업에서 중국을 억누르려는 것이다. 한 통상 전문가는 “미국 입장에서는 한국이 중국의 첨단 기술력을 높여주는 것을 차단하고 미국에 투자해 경제·기술 동맹을 강화하길 간절히 원한다. 한국 입장에서도 미국 중심의 공급망 개편에 참여하는 게 ‘몸값’을 높이는 기회”라고 말했다.

이용상 기자 sotong20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