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적으로 ‘성차(性差) 의학’이 주목받고 있다. 남녀의 생물학적 특성, 사회문화적 역할을 감안해 의학을 연구하고 현장 치료에 접목한다는 개념으로 2000년대 들어 정립됐다. 최근 연구들에 의하면 질병의 발생률, 증상, 이환(진행)율, 사망률에 있어 성별 차이를 더욱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어 성차 의학은 맞춤 치료를 지향하는 ‘정밀의료’의 필수 요소로 꼽힌다.
분당서울대병원 소화기내과 김나영 교수는 23일 “2005년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남성과 여성의 유전적 차이가 약 1%에 달한다는 연구결과가 나오면서 이는 아주 자명한 사실이 됐다”면서 “사실 1%가 뭐 그리 대단하냐고 할 수 있겠지만 인간과 침팬지 유전자 차이가 1.2%에 불과한 것을 보면 1% 차이는 적지 않은 것”이라고 말했다.
여성과 남성 차이는 호르몬이나 유전자에 의해 차이가 나는 성(sex)과 남녀로 태어나 사회·문화적 역할에 의해 형성되는 차이인 젠더(gender) 측면으로 구별할 수 있다. 이 두 가지는 상호 연관성을 갖고 질병 발생에 영향을 준다.
김 교수는 “남녀 어느 성을 표준화된 몸으로 채택한 결과 남성 또는 여성에게 더 큰 생명의 위협이 되고 있다는 사실이 과학적으로 증명되면서 성별 특성을 반영한 연구가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전 세계적으로 형성되고 있다”고 했다.
연구 결과에 대한 신뢰성 확보 및 재현성을 위해서도 성차를 적절하게 반영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논리 아래 해외 유명 학술지는 전임상(동물실험) 및 사람 대상 임상 연구에서 성차를 꼭 밝힐 것을 요구하고 성을 밝히지 않을 경우 그 이유가 무엇인지 설명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이런 국제적 추세에 따라 지난해 3월 우리나라 국회에서도 ‘성별 특성을 반영한 과학기술기본법 개정안(일명 젠더 혁신법)’이 통과됐고 향후 연구개발(R&D)에 성별 특성 분석을 반영하도록 했다. 이에 따라 환자 개개인의 특성을 고려한 치료법 연구와 적용이 핵심인 정밀의료의 한 축으로 ‘성차 의학’은 더욱 확산될 것으로 기대된다.
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