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증시가 깊은 조정기에 들어가면서 개인투자자 사이에서 정부가 ‘증시안정펀드’를 활용해 주가를 방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증시 급락에 대비해 준비해 둔 돈을 지금 풀어야 한다는 주장이지만 전문가들은 신중한 대응을 주문하고 있다.
19일 금융권에 따르면 국내에는 증시가 급락할 경우 주가 부양을 목적으로 조성된 증시안정펀드가 존재한다. 코로나 확산 공포가 최고조에 이른 2020년 코스피지수가 1400선까지 떨어지자 정부와 금융권이 합심해 10조원가량의 펀드를 조성했다. 다만 당시 바로 돈을 모은 것은 아니고 출자 약정을 했다. 정부가 결심하면 언제든 10조원의 ‘실탄’을 조성해 주가 부양에 투입할 수 있는 것이다.
증시안정펀드 약정 사실을 잊지 않은 개인투자자들은 최근 이를 실현해 시장에 투입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정의정 한국주식투자자연합회 대표는 “우리나라 주식시장은 가뜩이나 저평가된 탓에 하락 폭이 다른 나라와 비교해 깊다”며 “증시안정펀드를 방치하지 말고 활용해 선제적으로 주가 붕괴에 대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개인투자자들은 과거에도 증시안정기금 운용 사례를 거론한다. 금융권은 1990년 5월 주가가 폭락하자 4조8500억원 규모의 기금을 출자해 6년 동안 운영했다. 증시안정펀드의 효시인 셈이다. 12년 뒤인 2008년 11월에는 리먼브러더스발 글로벌 금융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한국거래소·예탁결제원·금융투자협회 유관기관들이 5150억원 규모의 ‘증시안정공동펀드’를 출시해 5개월에 걸쳐 채권과 주식을 매입했다.
다만 현 정부는 증시안정펀드 운용에 큰 관심이 없어 보인다. 금융 당국 관계자는 “증시안정펀드는 최악의 상황을 대비해 마련한 수단”이라며 “현재로서는 뚜렷한 활용 계획이 없다”고 말했다.
아직 증시안정펀드 카드를 쓰기엔 시기상조라는 분석도 있다. 증시안정펀드가 기업 실적 등 근본적인 증시 체질 개선을 이뤄 줄 수 없기 때문에 주가 하락세를 일시적으로 방어해주는 임시방편이기도 하다. 기업 펀더멘털이 견고해지지 않는다면 기금을 투입해도 큰 소용이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현재 증시 하락세는 글로벌 긴축 기조와 기준금리 인상에 따른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며 “추후 증시 하락세가 정상 범주를 벗어나 폭락세로 돌변했을 때를 대비해 증시안정펀드를 아껴놔야 한다”고 말했다.
김지훈 기자 germa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