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가 늦어 미안합니다”… “다 풀어버리고 오래 사시길”

입력 2022-05-20 04:03
배모씨가 19일 오전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 경찰 묘역에서 묘비를 쓰다듬으며 사죄하고 있다. 배씨는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경찰들을 향해 고속버스를 몰고 돌진해 경찰 4명을 숨지게 했다. 연합뉴스

42주기 5·18민주화운동 기념일 이튿날인 19일.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 경찰충혼탑 앞에서 배모(77)씨가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사과가 늦어서 죄송합니다. 뭐라고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그는 거듭 고개를 숙였다. 배씨가 고개를 숙인 방향에선 눈물을 흘리는 유족들이 서 있었다. 배씨는 1980년 5월 20일 밤 광주 전남도청 앞에서 경찰들을 향해 고속버스를 몰고 돌진해 함평경찰서 소속 경찰관 4명을 숨지게 했다.

버스에 치여 사망한 고(故) 정춘길 경사의 부인 박덕님(82)씨는 떨고 있는 배씨의 손을 쓰다듬으며 “42년 동안 우리 상처를 보듬어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는데 용기 내줘 고맙다”며 “이제 (죄책감을) 다 풀어버리고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시길 바란다”고 하면서 오열했다.

이날 만남은 5·18민주화운동진상규명조사위원회 조사를 받던 배씨가 유족에게 사과할 뜻을 밝히면서 이뤄질 수 있었다. 위원회가 ‘함평 경찰 버스 충돌 사망 사건’ 유족들과 그의 만남을 주선했다. 정 경사 유족을 비롯해 고(故) 강정웅 경장, 고(故) 이세홍 경장의 유족 8명이 참석했다. 고(故) 박기웅 경장 유족은 참석하지 않았다.

위원회 조사 결과 1980년 당시 고속버스 운전기사였던 배씨는 버스에 시위대를 태운 채 경찰관들을 향해 돌진했다. 이 사고로 경찰관 4명이 사망하고 7명이 부상했다. 경찰은 당시 시위대의 전남도청 진입을 막기 위해 저지선을 세우고 대기 중이었다. 상부로부터 “시위대 진압 시 강력히 대응하지 말라”는 지시가 내려져 있었다.

박씨는 “(내 남편은) 광주 시민과 학생을 보호하려고 간 것인데 자꾸만 (경찰이 시민들을) 죽였다고 하니 고개를 들 수가 없어 땅만 보고 다녔다”며 “아무도 명예회복을 해주지 않아 억울했다. 선생님(배씨)이 그렇게 하고 싶어서 했겠냐. 상황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을 이해한다”고 말했다.

이날 배씨는 순직한 경찰들의 묘비를 하나씩 쓰다듬으며 고인들에게 용서를 구했다. “꿈에서라도 (사고 당시로) 한번 가봤으면 좋겠어요. 도무지 왜 그랬는지 모르겠어요.”

그는 연실 울먹였다. 백씨는 사고 당시 “야간이었고 최루가스로 인해 눈을 뜰 수 없어 앞이 보이지 않았다”고 주장했었다.

유족 측은 “한 가정의 가장이 1980년 5월 광주에서 시민이 운전하는 고속버스에 압사해 순직했는데 국가는 아무런 말을 해주지 않았다”며 “역사가 죽음을 밝혀냈지만 죽음으로 내몬 책임자들은 이를 외면했고 이제야 그 책임을 지겠다는 사고 당사자에게만 사과를 받게 됐다”고 했다.

배씨는 당시 살인·소요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전투교육사령부 계엄보통군법회의에서 열린 1심과 이듬해 열린 항소심에서 각각 사형을 선고받았다. 이후 무기징역으로 감형됐다가 1982년 12월 특별사면 조치로 석방됐다. 1998년 7월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박민지 기자 pm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