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립국을 택해 인도 마드라스로, 이명준은 동지나해를 지날 무렵 투신…. ‘북에는 광장밖에 없고 남에는 밀실밖에 없다’.” 며칠 전 한 검사로부터 문득 최인훈의 ‘광장’을 적은 문자메시지가 왔다. 대검찰청 차장검사와 서울중앙지검장, 법무부 검찰국장이 결정됐다는 뉴스가 쏟아졌지만 정작 법무부는 이름도 인사 날짜도 말하지 못하던 밤이었다.
검사가 영국 군함에 올라 인도를 향하는 포로를 말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지난 18일 검사 인사 명단을 확인한 검찰 구성원들의 표정은 복잡해 보였다. 축하받을 이들의 능력과 역사를 인정하면서도, “중립지대에 있는 사람들은 설 곳이 없다”고 했다. 한 무리가 떠나고 한 무리가 오는 현상이 조선시대 당파, 심지어 사화(士禍)에 비유된 지도 오래다.
많은 이들은 전날 인사를 2019년 7월 윤석열 대통령의 검찰총장 취임 직후 인사에 빗댔다. 그때 검사들은 “총장이 서울중앙지검장처럼 인사를 한다”고 말했었다. 조직 전체를 봐 달란 항변으로 들렸다. 색채 분명한 인사는 색채 없는 이들을 고려하지 못했다. 비정상의 정상화라는 말은 건너편에서 보면 또 다른 친정권 코드가 된다. 한 전직 고검장은 “이래서는 정치적 중립을 말하기 힘들다. 대통령 임기는 5년이지만 검찰은 존속해야 한다”고 말했다.
때마다 영전과 좌천이 논평되지만 따져보면 공직자에게 한직은 없다. 고검이나 지방행을 ‘귀양’으로 적는 언론부터 문제라는 말을 들은 적도 있다. ‘별’ 없이 정년퇴임하던 검사가 “가라는 곳에 가 일하는 게 직분”이라고 했다. 윤 대통령은 “검사가 부임하는 임지는 중요하지 않은 곳이 한 군데도 없다”고 말했었다.
애초부터 중간 관리자 한명 한명의 인사가 비중 있게 언급되는 곳은 공무원 조직 중 검찰이 유일하다. 이것은 언제부터일까. 언론의 잘못일까 검찰의 책임일까, 검찰이 정치화한 것일까 정치가 검찰을 흔든 것일까. 고리를 끊을 생각 없이 연원을 따지는 일은 이제 무의미해 보인다. ‘광장’을 보내온 검사는 다음 날 인사에 이름이 들어 있었다. 모두 이명준처럼 이데올로기에 지쳐 가는 듯했다.
이경원 사회부 기자 neosar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