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첫 분기 매출 1조원을 돌파한 SKC를 두고 업계에선 “동박으로 대박 났다”는 말이 흘러나왔다. SKC의 손자회사이자 동박 제조업체인 SK넥실리스는 1분기에만 1만t이 넘는 동박을 팔았다. 동박 제조로는 원조 격인 일진머티리얼즈도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매출이 2배 넘게 뛰는 등 역대급 판매량을 올린 것으로 전해졌다.
동박은 전기차 배터리의 음극재에 들어가는 얇은 구리 막이다. 10년 전만 해도 동박 시장은 후루카와, 니폰 덴카이 같은 일본 기업이 장악했다. 그러다 주도권의 한국으로 넘어왔다. 한국 기업은 어떻게 동박 시장에서 반전을 이뤄냈을까.
전기차 배터리용 동박 시장은 사실상 한국 기업에서 쥐고 있다. 18일 시장조사업체 SNE리서치에 따르면 1위 SK넥실리스의 점유율은 지난해 기준으로 22%에 이른다. 일진머티리얼즈는 13%를 기록하고 있다. 2009년만 해도 42.6%를 자랑하던 후루카와, 12.7%였던 니폰 덴카이는 2%, 5%로 추락했다. 중국과 대만의 기업들이 저가 제품을 대량 생산하면서 점유율을 확보하고 있지만, 품질 면에서 한국은 비교우위를 차지하고 있다. 실질적 주도권은 한국 기업의 손에 있는 셈이다.
한국과 일본의 동박 제조기업 운명을 바꾼 건 전기차다. 그동안 PCB판, 소형 스마트폰에 사용되던 동박이 전기차 배터리에 들어가면서 품귀 현상을 빚을 정도로 수요가 급증했다. 보통 스마트폰에는 동박 5g가량 들어간다. 전기차에는 배터리 용량에 따라 차이 나지만, 대당 15~20㎏의 동박을 필요로 한다.
배터리 시장을 한국 기업이 선도하면서 기술력을 갖춘 한국 소재기업은 반사이익을 누리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SK온 같은 한국 기업의 배터리 생산량이 늘자 자연스럽게 납품업체인 동박 제조기업도 성장세를 탔다. 만드는 족족 팔린다”고 전했다.
탄탄한 기술력도 뒷받침이 됐다. 동박은 수요가 많지만, 진입 장벽이 높은 소재다. 특히 전기차 등에 쓰이는 ‘하이테크 동박’은 얇으면서 일정한 두께를 가져야 한다. 표면 거칠기는 적어야 하고 강도가 높아야 한다. 동박은 얇을수록 쉽게 찢기고 주름이 생길 수 있어 높은 기술력을 필요로 한다. 한국 배터리 기업들이 한국 소재기업을 찾는 건 그만큼 기술적 우위를 인정한다는 의미다.
전기차에는 6~8마이크로미터(㎛) 두께의 동박을 사용한다. SK넥실리스는 좀 더 얇은 4㎛ 동박을 폭 1.4m, 길이 30㎞로 양산하는 데 성공했다. 경쟁사보다 5~8년 앞서는 기술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한국 동박 기업들은 늘어나는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공장을 신설하는 등 생산 능력을 확대하고 있다.
일진머티리얼즈는 오는 2024년까지 스페인 카탈루냐에서 연산 2만5000t 규모의 동박 공장을 짓고 있다. SK넥실리스는 올해 안에 미국에 공장부지를 선정할 예정이다. 현재 연간 5만t인 생산량을 2025년 25만t까지 확대할 계획이다.
황인호 기자 inhovato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