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넘어 대통령실까지… 잊을만하면 터지는 ‘정치권 성비위’

입력 2022-05-21 04:03
게티이미지뱅크

6·1 지방선거를 불과 11일 앞두고 각종 성추문이 정치권을 강타하고 있다. ‘안희정·오거돈·박원순’ 사태로 홍역을 치른 더불어민주당은 잊을 만하면 터지는 권력형 성비위로 충격에 휩싸인 모습이다. 국민의힘은 민주당을 가리켜 ‘성범죄 전문당’이라며 파상 공세에 나섰지만 당대표가 과거 성접대를 받았다는 의혹이 걸려 있어 마냥 웃을 수만은 없는 상황이다. 여기에 새 정부 대통령실 비서관의 성추문까지 겹쳤다. 정의당에서도 성비위가 재차 불거져 여성 인권을 당의 핵심 가치로 내걸어온 것이 무색해졌다.

민주당의 3선 중진이던 박완주 의원은 지난해 말 보좌관을 성추행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지난 16일 민주당에서 제명됐다. 민주당은 17일 박 의원 징계안을 국회 윤리특별위원회에 제출하는 등 서둘러 진화에 나섰다. 피해자는 업무상 위력에 의한 강제추행, 직권남용 등 혐의로 박 의원을 경찰에 고소했다. 하지만 박 의원은 “어떠한 희생과 고통이 있더라도 아닌 것은 아니다”라는 입장을 밝혔다. 당의 제명 결정은 수용하지만, 자신이 받는 의혹의 사실관계를 인정할 수 없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민주당에선 이것 말고도 성비위 관련 잡음이 끊이지 않았다. 최강욱 의원은 당내 온라인 회의 도중 성희롱성 발언을 한 일로 논란이 됐고, 김원이 의원은 보좌관의 동료 직원 성폭행 사건과 관련해 2차 가해 의혹을 받고 있다.


박 의원 건은 아직 의혹 상태지만, 대상이 부하직원이라는 점에서 민주당 소속 광역단체장들의 ‘권력형 성범죄’와 일맥상통한다. 안희정 전 충남지사는 2018년 수행비서를 성폭행한 혐의로 2019년 대법원에서 징역 3년6개월의 실형이 확정됐다. 오거돈 전 부산시장은 2020년 부하직원을 강제추행한 혐의로 1심에서 징역 3년을 선고받았고, 지난 2월 항소심에서도 형이 그대로 유지됐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은 2020년 7월 부하직원을 성추행한 혐의로 고소당한 뒤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성추문은 민주당만의 문제는 아니다. 국민의힘 전신인 자유한국당·새누리당·한나라당은 과거 잇단 성추문으로 ‘성(性)누리당’이란 오명을 얻은 바 있다. 유튜브 채널 ‘가로세로연구소’는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2013년 대전의 호텔에서 한 기업 대표로부터 성접대를 받았다고 폭로했다. 이 대표가 측근을 통해 제보자에게 본인이 성접대를 받은 게 아니라는 내용의 진술서를 써 달라고 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이 대표는 결백을 주장하고 있다.

국민의힘 윤리위원회는 증거인멸교사 의혹과 관련해 지난달 21일 사상 최초로 당대표에 대한 징계 절차를 개시했다. 경찰 수사도 진행 중이다. 윤리위는 수사 결과를 지켜본 뒤 징계 절차에 착수하겠다는 입장이다. 지방선거 이후 이 대표 의혹이 정치권의 뇌관으로 떠오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국민의힘 의원들은 일단 “수사 결과를 지켜봐야 한다”며 판단을 유보하고 있다. 한 영남권 의원은 “이 대표 측근이 매끄럽지 못하게 업무를 처리한 부분이 있다고 해서 성접대가 사실임을 담보할 수 있는 건 아니다”고 말했다. 한 여성 의원은 “조심스럽게 지켜보고 있다”면서 “제기된 의혹 중 잘못된 부분이 드러난다면, 그에 상응하는 처분을 해야 마땅하다”고 주장했다.


윤재순 대통령실 총무비서관의 과거 성비위 의혹도 여권에 악재로 작용하고 있다. 윤 비서관은 검찰에 재직하던 1996년과 2012년 회식 자리 성비위로 징계 처분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17일 국회 운영위원회에 출석해 자신의 의혹에 대해 사과했지만, 해명하는 과정에서 ‘직원들에게 생일빵을 당해 화가 나서 뽀뽀해 달라고 했다’는 식으로 발언해 논란을 더욱 키웠다. 윤 비서관은 과거 출간한 시집의 ‘전동차에서’라는 시에서 성추행을 ‘짓궂은 사내아이의 자유’로, 전동차를 ‘(그런) 자유가 보장된 곳’이라고 표현해 논란을 빚기도 했다.

지난해 1월 당대표가 동료 의원을 성추행해 제명되는 초유의 사태를 겪은 정의당에서도 성추문이 재발했다. 내부 기구인 청년정의당의 강민진 전 대표는 지난해 11월 광역시도당 위원장, 올해 3월 청년정의당 당직자로부터 성폭력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이후 정의당이 첫 번째 성폭력과 은폐 의혹이 사실이 아니라는 입장을 내놓자 강 전 대표가 재반박에 나서는 등 사태는 진실 공방으로 번졌다.

전문가들은 정치권에서 성비위가 끊임없이 반복되는 원인을 구조적인 문제에서 찾았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는 “한국 사회는 여전히 남성 위주의 문화가 지배하고 있다”면서 “국회 또는 조직에 여성이 적어도 30%는 존재해야 평등한 조직 문화가 형성될 수 있다”고 말했다.

처벌 수위가 약한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김 교수는 “박 전 시장 사건이 터졌을 때 업적을 기린다며 5일장을 지내고 ‘피해호소인’이라는 말까지 등장해 사회 전반적으로 잘못된 인식을 갖게 만들었다”며 “일벌백계하려면 당 차원에서 고발 등 강력한 조치를 취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현우 서강대 교수는 “정치권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에 보편적으로 발생하는 문제”라면서 “사회는 빠르게 변하는데 개인의 성인지 감수성이 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송란희 한국여성의전화 상임대표는 “전체 의원들이 각성할 수 있는 교육이나 캠페인 등 후속 조치가 당 차원에서 필요하다”고 말했다.

구승은 기자 gugiz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