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 엄마와 헤드뱅잉

입력 2022-05-16 04:07

막 중학교에 들어갔을 때 미술 선생님이 학교에 새로 오셨다. 오자마자 몇 장의 누드 크로키를 보여줘서 학생들이 모두 충격을 먹었다. 그래서 우리는 그를 변태 선생님이라 불렀다. 그 선생님은 한번도 본 적 없는 영화나 뮤직비디오도 틀어줬다. 그리고 어느 날 소리 소문 없이 사라졌다. 종종 학생들을 엎드려 뻗치게 한 다음 회초리로 때렸던 게 문제가 됐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내가 다닌 학교는 대략 정규 교육의 대안이 된다는 의미로 ‘대안학교’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몇몇의 선생님들은 자기가 매우 좋아하는 것을 실컷 알려줬던 것 같다. 미술 선생님도 그랬던 것 같은데, 그분은 나를 록 음악의 소용돌이로 데려간 사람이다. 어느 날 그는 여느 때처럼 자신의 USB에 담아 온 뮤직비디오 한 편을 틀어줬고 그것은 영국의 한 전설적인 프로그레시브 록 밴드 뮤직비디오였다.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컨베이어 벨트 위를 걷다가 기계 속으로 빨려 들어가 전부 같은 얼굴로 변해버리는 내용에 나는 마음을 빼앗기고 말았다.

어느새 전교생 100명의 학생 중 꽤 많은 수가 다양한 장르의 록 음악을 듣고 있었다. 학교에서 제일 잘나가던 밴드부 남학생들이 갑작스레 1960년대에 영국과 미국을 풍미했던 밴드 ‘비틀스’처럼 입고 다니기 시작했다. 우리는 만화로 보는 록 이야기나 재즈 이야기 등의 책을 돌려 보며 경쟁적으로 음악에 대한 지식을 쌓아나갔다. 조사에 의하면 이것은 내가 다니던 학교뿐 아니라 여타 대안학교에서 비슷하게 나타난 양상이라고 한다. 아무래도 중학교 때는 대부분 반항기가 있고 몇몇 선생님들도 록 음악에 곧잘 빠졌으니 잘 먹히지 않았을까 싶다.

언젠가는 공연장에 엄마를 데려갔더니 지옥을 본 것 같다고 학을 뗐다. 그때는 그 말이 너무 속상해서 울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철부지 같다. 하지만 난 아직도 엄마와 헤드뱅잉 하는 꿈을 꾼다.

이다울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