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은 11일 새 정부 초대 국가정보원장 후보자로 김규현(69) 전 국가안보실 1차장을 지명했다. 김 후보자는 정통 북미라인 외교관 출신으로, 과거 정부에서 청와대와 국방부를 두루 거친 외교안보 전문가다.
대통령 측근이나 국정원 내부 인사가 아닌 정통 외교관 출신이 국정원장으로 발탁된 것은 이례적이다. 국정원을 해외 첩보 중심 기관으로 재편하겠다는 윤 대통령의 의지가 반영된 인사로 분석된다.
김 후보자는 외교관으로서는 특이하게 서울대 치의학과를 졸업했다. 대학 재학 중인 1980년 외무고시에 합격해 공직에 입문했다. 외교부에선 북미1과장과 북미국 심의관, 주미 한국대사관 참사와 공사 등을 지냈다.
김 후보자는 김대중정부 당시 대통령 비서실에 근무했고, 노무현정부 때는 국방부 국제협력관을 맡아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등 한·미 간 국방 현안을 다뤘다. 박근혜정부 들어서도 외교부 1차관과 국가안보실 1차장, 대통령 외교안보수석 등 요직을 역임했다. 2014년 안보실 1차장 재임 때는 남북고위급 접촉 당시 수석대표로 나서 북측과 협상을 벌이기도 했다. 지난 대선 경선 기간에는 윤석열 캠프에서 외교안보특보를 맡았다.
국정원을 이스라엘의 ‘모사드’와 비슷한 첩보 기관으로 만들겠다는 의지를 밝혀온 윤 대통령이 외교와 국방, 남북 관계 분야에서 두루 경험을 쌓은 김 후보자의 이력을 높게 평가해 국정원장으로 낙점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김 후보자는 문재인정부 들어 세월호 사고 보고 시각 조작에 관여한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았다. 서울중앙지검 반부패수사1부에서 김 후보자의 관련 혐의 수사를 아직 진행하고 있다.
국정원장 후보자는 국회 정보위원회의 인사청문회를 거쳐야 한다. 국정원장 청문회는 개인 신상이나 도덕성 부분은 공개로, 대북 정보 등 안보 현안 부분은 비공개로 진행한다. 한덕수 국무총리 후보자 인준을 두고 갈등하고 있는 여야가 국정원장 청문회에서 다시 한번 충돌할 가능성도 있다. 다만 국정원장은 다른 장관 후보자와 마찬가지로 국회의 동의 없이 대통령이 임명할 수 있다.
윤 대통령은 해외·대북 정보 수집을 담당하는 국정원 1차장에는 권춘택(62) 유엔글로벌콤팩트(UNGC) 한국협회 사무총장을 내정했다.
권 내정자는 고려대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1986년부터 국정원의 전신인 국가안전기획부 해외 파트 등에서 근무한 뒤 주유엔 공사, 국정원장 비서실장 등을 거쳤다. 또 주미 한국대사관 정무2공사를 지내며 미 중앙정보국(CIA)과의 협력 업무를 담당했다. 국정원 1차장은 청문회 없이 바로 임명된다. 권 내정자는 국정원장 청문회가 끝날 때까지 원장 직무대행을 맡을 것으로 보인다.
문재인정부 마지막 국정원장인 박지원 원장은 이날 페이스북에서 “국정원장직을 떠난다”며 “중단 없는 개혁만이 국정원의 미래와 역사를 만들 것”이라고 밝혔다.
박세환 기자 foryo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