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지수 3300을 넘기며 고공행진하던 코스피가 최근 수개월간 급격한 내림세다. 10일엔 2600선마저 붕괴하며 기나긴 약세장을 예고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공격적인 긴축 등 악재가 계속되는 상황에서 국내 증시가 또다시 ‘박스피’로 돌아갈 수 있다는 암울한 전망이 우세하다. 증시 전문가들은 올해 들어 낙폭이 가팔랐던 만큼 단기 반등이 있을 것이라면서도 장기적으로는 침체를 예상했다. 코스피가 최소 1~2년간 하락·횡보할 것으로 전망하는 전문가들이 많았다. 미국 정부가 2년간의 양적 완화 기조를 거두고 강한 긴축에 나서 시장이 크게 위축될 것이란 얘기다. 일부 전문가는 올해 코스피가 2400까지 떨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반등을 예측하는 전문가들도 당분간 3000고지를 회복하기는 쉽지 않다고 봤다.
“최소 2년간 ‘박스피’ 우려”
김학균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은 “미 연준이 계속해서 기준금리를 올릴 것으로 예상하는 만큼 주식시장은 장기적 측면에서 하방 압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며 “최악의 경우 코스피가 2400선까지 밀릴 수 있다. 그다음에는 최소 1~2년간 하락·횡보가 반복되는 ‘박스피’가 재현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스피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국내 증시 양상을 나타내는 용어로, 지수가 박스권에 갇힌 것처럼 일정 수준 이상 상승하지 못하고 횡보하는 현상이다.
김영익 서강대 경제대학원 교수도 당분간 지루한 장세가 지속할 것으로 관측했다. 김 교수는 “다음 해 상반기까지는 하락 추세를 보고 있다”며 “코스피가 2600에서 2900 사이를 왔다 갔다 하는 장세가 지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현재 예상되는 주식시장 약세는 글로벌 경기가 수축 국면에 들어서고 각국 정부도 긴축 정책을 펴는 것에 대한 시장의 반응”이라며 “과거 데이터를 보면 경기수축이 끝나기까지 걸린 평균 기간이 19개월이었다. 최소 1~2년은 박스피 장세가 이어질 것이라는 의미”라고 말했다.
장기화하는 인플레이션도 주식시장에는 악재다. 김영환 NH투자증권 연구원은 “향후 3년간 미국 물가인상률 전망치가 4개월 연속 상승하고 있다”며 “연준이 인플레 대응을 위해 금리를 공격적으로 올릴 것이란 불안감이 확산하며 투자자 이탈이 가속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정원일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고인플레이션 상황이 지속하며 시장은 생산성 측면에서의 장기적인 선순환 구조가 유지될 수 있을지에 대한 의구심을 품고 있다”고 전했다.
“기술적 반등 기회 온다”
주가의 계속된 하락에 개인투자자들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공통적으로 본격적인 횡보장 직전 찾아오는 ‘기술적 반등’ 시점을 노려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 센터장은 “올해 중에서도 특히 지난달 주식시장 하락률이 이례적으로 높았다”며 “조만간 과대 낙폭의 반작용으로 기술적인 반등이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보통 주식시장이 큰 악재를 만나 타격을 받으면 대표지수가 20~25% 정도 내린다. 2018년 미국발 긴축 당시에도 23% 정도 내렸다”며 “현재 코스피도 고점 대비 20% 정도 내린 상태인 만큼 슈팅이 나올 때가 됐다”고 분석했다.
김 센터장과 김 교수 모두 “기술적 반등 자리가 나오면 주식 옥석 가리기를 통해 성장성이 떨어지는 종목을 정리하고 시장을 관망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전했다. 이들은 특히 국내 기업보다 주가가 훨씬 가파르게 성장해온 미국 기술기업 등 성장주의 경우 낙폭이 훨씬 클 수 있다고 경고했다.
김 센터장은 “금명간 찾아올 것으로 보이는 ‘기술적 반등’ 타이밍을 놓치면 (손절) 기회조차 마땅치 않다”며 “손절 생각이 없다면 배당주 위주의 포트폴리오를 구성해 불안 장세가 끝날 때까지 버티기 작전에 들어가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채권·외환 투자도 대안
꼭 투자하고 싶다면 채권이나 외환 등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투자처로 눈을 돌리는 것도 방법이다. 김 센터장은 “신용도가 높은 금리부채권 등 채권형 상품의 경우 수익률이 4%까지도 나온다”며 “지난 10년간 개인투자자의 코스피 평균 투자수익률이 2%도 안 된다. 이렇게 불안정한 국면에서 4% 수익을 꾸준히 낼 수 있다는 것은 상당히 매력적”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최근 급등한 브라질 남아프리카공화국 등 신흥국 국채는 높은 이자율에 혹해 섣불리 투자했다가 큰 손해를 볼 수 있어 주의해야 한다. 오창섭 현대차증권 연구원은 “채권 가격은 금리에 반비례하는 만큼 금리 급등기에 변동성이 높은 채권을 매입하면 가격 하락으로 인한 자본 손실을 볼 수 있다”며 “예측불가능한 환율 변동으로 인한 환차손도 계산에 넣어야 하는 등 개인이 수익을 내기 어려운 환경”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일본 엔화의 가치가 지나치게 평가절하됐다며 ‘환테크’를 언급했다. 엔화는 지난 3월부터 급락을 지속해 20년 만에 가장 낮은 가치를 기록 중이다. 글로벌 공급망 마비 사태, 코로나19 사태 등이 진정되고 엔화 가치가 정상화하면 상당한 환차익을 기대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최근 엔화를 사는 사람이 늘면서 국내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의 엔화 예금 잔액은 지난달 말 기준 6044억엔(약 5조9000억원)을 기록했다. 지난해 말보다 약 22%(1078억엔) 증가한 수치다.
김지훈 기자 germa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