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섬情談] 진짜가 되라

입력 2022-05-11 04:02

서울 홍제천에서 한강까지 10㎞를 뛰었다. 인스타그램에 사진 올리는 걸 빠트릴 수 없지. #런스타그램 #달리기그램 해시태그도 잊지 말고. 함께 뛴 친구가 찍어준 사진을 고르는데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 사진 보정 앱을 켜고 빠르게 손을 움직인다. 다리도 조금 늘리고, 허리는 잘록하게…. 중요한 것은 앱으로 작업하지 않은 듯 지나치지 않게, 왼쪽 오른쪽으로 스크롤바를 세심하게 밀면서 줄었다 늘었다 하는 다리 길이를 보다가 적정치를 찾아야 한다. 현실의 나와 보정한 사진 속의 내가 자연스럽게 겹치는 딱 그 순간. 그 황금비율의 순간.

사진을 올렸다고 끝이 아니다. 인스타그램의 노예가 되는 건 지금부터다. 친구와 이야기 하다가도, 밥을 먹다가도, 책을 읽다가도, 휴대폰을 켜고 인스타그램 버튼을 누른다. 배고픔에 자극을 받는 것보다, 배변의 욕구보다 더욱 즉각적이고 강렬한 반응이다. 두뇌 속에서는 몇 분마다 ‘휴대폰을 열어 봐’ 하는 신호가 맹렬히 반짝인다. 하트의 행렬에 마음이 놓인다. 하트의 숫자가 늘어나는 만큼 SNS 속 나의 자아는 더욱 비대해지고 가식적으로 돼 간다. 그런 모든 자각 속에서 씁쓸해지다가도 ‘예뻐요’라는 댓글에는 잊지 않고 ‘감사합니다’라며 응답을 해 둔다. 그게 SNS 세계의 에티켓이니까.

“내 인생의 대부분은 인터넷이라는 강제 접속의 미로를 빼놓고는 이야기할 수 없다. 이 광기 어리고 과열된, 우리를 숨 막히게 하는 지옥 말이다.” ‘밀레니얼세대의 수전 손택’이라는 워싱턴포스트의 찬사와 함께 등장한 지아 톨렌티노는 그의 책 ‘트릭 미러’에서 인터넷 속에서 만들어지는 개인의 정체성을 탐구한다. 1988년생인 작가는 홈페이지를 만들던 10대를 지나 온라인 담론을 이끄는 최전선의 사이트에서 글을 쓰며 성장한 인터넷 인류다. 하지만 사물을 왜곡하는 ‘트릭 미러’처럼 성취만을 과시하는 인터넷 세계의 온라인 자아를 마주하게 되면서 필터를 거치지 않은 진짜 나를 찾는 여정을 대담하고 솔직하게 기록한다.

최근 비리얼(Be Real)이라는 새로운 SNS가 유럽과 미국을 중심으로 크게 인기를 얻고 있다. 이름 그대로 인스타그램의 ‘가짜 일상’ 대신 지금 이 순간의 ‘진짜 일상’을 공개해야 한다. 비리얼에 가입한 사용자는 하루에 한 번 알림을 받으면 2분 안에 사진을 찍어 올리는 것이 규칙이다. 앱을 켜는 순간 나를 비추는 전면의 카메라와 장소를 비추는 후면 카메라가 동시에 촬영된다. 다른 사람의 사진을 보려면 반드시 내 사진을 올려야 한다. 침대에 누워 부숭부숭 부은 얼굴을 찍어 올려야 다른 사람들의 진짜 모습을 볼 수 있다. 내 패를 보여야 다른 사람의 패도 볼 수 있다는 것. 더욱 재밌는 것은 사진 게시 시간을 누구나 볼 수 있게 한 것이다. 주어진 2분 안에 사진을 못 찍으면 조금 늦게 올릴 수도 있지만 그 시간이 함께 공유된다. 사진을 꾸미려는 나의 의도 또한 그대로 공개가 되니 창피해진다. 내가 어떤 모습이든, 어디에 있든 있는 그대로의 나를 공개하는 것이 비리얼의 진짜 인기 이유다.

비리얼의 인기가 10대와 20대를 중심으로 확산된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끊임없이 타인과 비교하면서 완벽하지 않은 내 모습을 완벽하게 꾸미고 최고의 순간만을 공유해야 한다는 압박감은 10대들의 섭식 장애는 물론 우울증까지 발병할 수 있는 원인을 제공한다. 이 모든 압박감에서 10대들 스스로가 자유로워지고 싶어 하는 것이다. 사회학자 어빙 고프먼은 1959년 발표한 저서 ‘자아 연출의 사회학’에서 인간은 모든 상호 관계 속에서 연극배우처럼 연기하고 인상을 남긴다고 말한다. 실제로 나의 정체성은 약간의 자기기만이라는 양념이 더해져서 만들어진다. 하지만 SNS의 문제는 내가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극히 일차원적이고 적나라한 설명서라는 답을 보일 뿐이다. 이렇게 복제된 정체성을 혼란스럽게 바라보던 우리 모두는 이제 ‘행복과 인기와 성공을 전시하려고 몸부림치는 서커스장’에서 탈출하고 싶어 하는지도 모른다. 휴대폰 알림이 깜빡인다. ‘BE REAL!’

최여정 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