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 공원과 도서관

입력 2022-05-11 04:05

‘정원과 도서관이 있다면, 더 필요한 것이 없다’는 로마시대 철학자 키케로의 말을 떠올리면서 둘 다 낙원 같은 공간이니 화사한 정원과 우직한 도서관이 함께 있으면 어떨까 상상해본다. 뉴욕 브라이언트파크와 공립도서관처럼 말이다. 하나 우리 실상은 좁은 도시에서 공공정원인 공원과 도서관이 오래 다퉈왔다. 1965년 서울 소공동 남대문도서관이 남산 자락으로 쫓겨나 남산도서관이 되면서 남산 입구를 막아버렸고, 탑골공원 인근에서 50년 이상 지켜온 종로도서관도 1967년 쫓겨나면서 인왕산과 사직공원 사이 오지에 틀어박혔다. 이처럼 인구 폭증과 도시 팽창 과정에서 여러 도서관 이전으로 공원과 산자락 숲이 제법 사라졌다.

21세기 들어 도시가 안정되면서 이 문제는 사라졌지만, 이젠 공원이 다양한 콘텐츠 제공을 고민하면서 역으로 작은 도서관을 도입했다. 2006년 서울숲 숲속도서관을 필두로 2008년 관악산 숲속도서관, 2013년 삼청공원 숲속도서관, 2014년 청운문학도서관 등이 문을 열었다. 2018년 타임지에서 삼청공원 숲속도서관을 미래도시의 혁신 사례로 소개하는 데 힘입어 서울시가 숲속도서관 건립을 본격 지원하기 시작해 양천공원, 응봉산, 천왕산에 속속 자리 잡았다. 구청도 노력을 기울여 동대문구 배봉산 숲속도서관이나 양천구 파리공원과 넘은들공원 책쉼터, 중구 손기정공원 문화도서관, 종로구 인왕산 초소책방 등 공원 내 도서관들이 경쟁력 있는 지역 문화콘텐츠로 개발되고 있다.

자연을 즐길 여유도 부족한 현실에서 공원에 굳이 도서관까지 넣어야 하나 의구심 갖던 때도 있었다. 하나 공원의 경쟁자가 놀이동산에서 쇼핑몰로, 또다시 가상현실로 넘어가면서 공원도 여러 콘텐츠와 적극 연대해야 했다. 잘 가꿔진 공원에서 다양한 체험과 문화콘텐츠를 함께 즐기는 방식이다. 인간과 자연의 연결을 상징하는 공원이 인간과 인류 문명의 연결을 상징하는 도서관과 한 공간에 어우러진다면 도시의 위기에 맞서는 작은 보루가 될 것이기에.

온수진 양천구 공원녹지과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