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부채 50% 괜찮다? 증가 속도 너무 빠른 게 문제”

입력 2022-05-10 04:04
유일호 전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5일 서울 중구 자택 인근 회의실에서 국민일보와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유 전 부총리는 “국가 부채가 왜 빠르게 상승했는지를 굉장히 심각하게 보고 시급히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한결 기자

유일호 전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박근혜 정부의 마지막 경제수장이었다. 유 전 부총리는 보수정권이 다시 집권한 현 시점을 경제 위기상황으로 진단했다. 그는 저출산 등 장기 과제도 문제지만 전 정부의 경제 실정부터 시급히 바로 잡을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어린이날인 지난 5일 서울 중구 소재 자택 인근 회의실에서 국민일보와 만난 유 전 부총리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이 50% 정도로 아직 낮으니 괜찮다고 할 게 아니다. 증가 속도가 너무 빠른 게 문제”라고 말했다. 얽히고설킨 부동산 문제는 “부동산 시장을 달래가며 안정화하는 정책을 하는 게 맞다”고 조언했다. 그는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 조세재정연구원에서 중용된 ‘경제통’이면서 국회의원과 장관직까지 두루 섭렵했다. 이론과 실무 모두 경험한 유 전 부총리에게 한국 경제 해법을 물어봤다.

-2017년에 37%대였던 국가채무비율이 올해 1차 추가경정예산 편성 기준 50.1%에 달한다. 아직 괜찮다는 의견과 걱정스럽다는 의견이 팽팽하다.

“국가 간 비교로 보면 한국 국가채무비율 50.1%는 그리 높지 않은 것이라고 하는 이들이 있다. 하지만 그렇게 보기에는 굉장히 무리가 있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도 자인했지만 증가 속도가 너무 빠른 게 문제다. 정부가 자인할 정도면 심각한 거다. 국제 신용시장에서도 좋지 않은 평가를 받을 수 있다. 국가채무비율이 30%대에서 15년에 걸쳐 50%대가 됐다면 모르겠는데 5년 사이 10% 포인트 이상 올라갔다면 앞으로도 그렇게 오를 거라고 평가한다. 국가부채에 대한 고민이 시급하다.”

-정부 부채 외에도 걱정할 부분이 있는 거 같다.

“공기업 등 공공부문 부채가 늘어난 것도 정부 부채만큼 걱정해야 한다. 초우량 기업인 한국전력공사가 저렇게 빚이 많이 생긴 점 등이 눈에 띈다. 사실 공공기관 부채는 현상 유지만 해도 잘 한 거라 본다. 박근혜정부 때는 그래도 부채가 거의 안 늘고 안정적으로 유지됐다. 그런데 지금은 정부 부채뿐만 아니라 공공기관까지 막 올라가는데 걱정스럽다.”

-물가가 비상이다. 스태그플레이션(경기침체 속 물가상승) 우려도 나온다.

“스태그플레이션은 요즘 기성세대가 한번도 겪어보지 못했다. 앞으로 인플레이션과 스태그플레이션이 오락가락하는 쪽으로 흐를수 있다고 본다. 한쪽에서는 인플레이션을 잡으면서 한편에서는 경기불황을 막아야 하는데 정책적으로 쉽지 않을 것이다.”

-결국 스태크플레이션 전조인 인플레이션을 막기 위해서는 중앙은행의 금리인상이 필요한것인가.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금리 인상을 예고했는데 중앙은행 총재가 웬만해선 올린다 내린다는 예고를 안 한다. 그만큼 불가피한 상황이다. 미국이 금리를 올리는데 한국이 안 올릴 수가 없다. 부채 규모가 크기 때문에 이자가 올라가면 부담이 될 수 있다. 저도 대출받은 게 있는데 변동금리로 했더니 요즘 금리가 막 올라가서 한숨이 나온다. 금리 대책이라는 게 인플레이션 시기엔 할 수 없이 해야 하는데 한국처럼 부채 많은 국가에서는 더 고통스러운 대책이 될 수밖에 없다. 이럴 때 재정이 도와줘야 한다는데 아시다시피 한국 재정이 도와 줄 여력이 이제는 거의 없다고 본다. 걱정스러운 부분이다. 다만 가계부채 규모 자체는 담보가 있는 부채여서 규모가 크다고 무조건 걱정할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새정부는 심각한 재정난을 막기 위한 방편 중 하나로 연금 개혁을 하겠다고 한다.

“당연히 해야 한다. 그런데 어떻게 잘 할 수 있을까는 참 고민스러운 부분이다. 연금 재정 악화를 막는 것만 해도 굉장히 중요하다. 최소한 이건 해야 하고 그 이상이 돼야 한다. 국민연금의 경우 적립식으로 하면 적자가 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재분배 요소가 있기 때문이다. 선진국들은 부과 방식을 젊은 세대가 세금 내서 은퇴한 세대들 연금주는 형식으로 다 바꿨는데 한국도 그렇게 하려면 젊은 세대들 불만이 많을 거다. 그래서 재분배 요소는 기초연금으로 떼어 내고 비례해서 주는 것은 민간연금 형태로 하는 식의 방식도 고려해 볼 만하다. 이런 요소들을 많이 도입해서 충격을 낮춰놔야 한다.”

-문재인정부 최대 실정은 부동산 정책이다. 어떻게 바꿔야 하나.

“이미 답이 다 나와 있지 않나. 일단 시작이 잘못됐다고밖에 볼 수 없다. 주택 가격이 오른 게 순전히 투기 때문이라고 보고 수요를 억제하겠다고 생각한 거다. 분양가 상한제나 초과이익환수제 등이 대표적이다. 문재인정부 출범 시기 부동산 시장은 썩 맘에는 안 들었겠지만 비교적 괜찮았다. 그럴 때는 시장 상황 주시하며 일 터지면 어떻게 하겠다 했어야 한다. 최소한 공급 확대랑 같이 갔어야 한다. 그런데 문재인 대통령이 세 번 정도 공급 충분하다고 했다가 나중에 말을 바꿨다. 그리고 강남 등 특정 지역 오르는 건 자사고 폐지 등 교육 문제도 있는데, 이런 상황 만들어 놓고 집값 때려잡겠다고 하면 되겠나 싶다. 새 정부는 시장을 달래가며 안정화하는 정책을 해야 한다.”

-부총리 퇴임 후 벌써 5년이 지났다. 그 동안 어떻게 지냈나.

“대학 강의하고 특강도 하고 놀기도 한다. 정치와 정부를 다 경험해본 입장에서 포퓰리즘을 경계하는 정책 관련 저서를 쓰고 있는데 진도가 잘 안나간다.”

-차기 정부 성공을 위한 제언을 해달라.

“문제가 된 것들을 바로 잡는 정책이 일단 필요하다. 장기적으로는 노동·규제 개혁이나 4차 산업혁명 선도 등 답은 알지만 못했던 것들을 지혜를 모아서 해결해야 한다. 정책 담당자들에게는 자신과 반대되는 입장에 있는 사람들 얘기도 잘 들으라고 말하고 싶다. 조화로운 정책을 만드는 게 정책 담당자들에게 주어진 임무다.”

신준섭 기자 sman32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