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년 전 목회 사역지를 찾는데 장애 때문에 서류에서 번번이 탈락했어요. 면접 한번 보게 해 달라고 요청해 어렵게 사역을 시작한 교회가 너와나의교회에요.”
지난 8일 서울 마포구 너와나의교회에서 만난 류흥주(57) 목사는 장애를 가진 예비 목회자들에게 간절하게 원하면 길이 열린다고 조언했다. 그러면서 “너와나의교회가 장애, 비장애인 성도 구분을 넘어 예배공동체와 사회공동체가 합쳐진 만남의 공동체가 되길 바란다”고 비전을 제시했다.
“입만 살아있는 고깃덩어리지만…”
류 목사는 중증 뇌병변장애와 청각장애를 안고 살아간다. 혼자서는 거동조차 할 수 없지만 매 주일 너와나의교회에서 말씀을 전하며 교인들을 섬기고 있다. “신체 중에서 입만 살아있다”는 그의 표현대로 불편함이 적지 않다. 하지만 류 목사의 목회는 여느 비장애인 목회자들처럼 열정적이었다.
류 목사는 이날 1시간 20분이 넘도록 예배를 인도했다. 휠체어에 앉아있던 그는 설교를 위해 기립형 휠체어의 도움으로 일어서 허리를 꼿꼿이 펴고 강단에 섰다. 50여분 설교 동안 류 목사의 발음은 어눌했지만 목소리에는 힘이 있었다. 설교에 앞서 일일이 성도의 이름을 부르며 “머리가 정갈해졌다, 표정이 밝아진 것 같다”며 소통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온몸 중 입만 살아 고깃덩어리에 불과한 나도 목사로서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며 함께 웃고 웃을 수 있어 감사해요.”
너와나의교회를 섬긴 지 11년이 됐지만 그에게 목회는 도전 그 자체였다. 아세아연합신학대와 협성대 신대원을 졸업한 그는 2000년 목사 고시에 합격했지만 목회지를 찾지 못했다. 대부분 교회에서는 그가 제대로 목회할 수 없을 것이라며 사역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한동안 장애인 인권운동가로 활동했다.
“장애가 있지만 목회자를 꿈꾸는 학생들은 교회와 많이 싸울 수 밖에 없어요. 싸워서 내 길을 만들려고 부단히 노력해야 합니다. 목회를 한다고 하자 노회와 다른 목사님들 반대가 심했어요.”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예배공동체
너와나의교회 주일 예배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만드는 공동체 모임이다. 이날 오후 2시 예배에는 장애인 성도와 비장애인 성도 10여 명이 함께했다. 휠체어에 탄 장애인 성도들은 예배당 중앙에, 일반인 성도들은 휠체어 옆이나 예배당 뒤편에 앉아 함께 예배를 드렸다.
예배 시작 30분 전, 휠체어를 탄 성도들은 미리 도착해 예배를 준비하고 있었다. 이들은 비장애인 성도의 도움을 받아 성경책과 찬송가를 찾으며 말씀과 찬송을 묵상하고 있었다. 잠시 후 비장애인 반주자의 찬송가 멜로디가 예배당을 채웠고 휠체어에 탄 성도들은 찬양을 흥얼거렸다.
오후 2시, 예배 시작시간이 다가오자 준비찬양 소리가 더 커졌다. 그 중심에는 교회 청년회장 김혜진(35) 성도가 있었다. 뇌병변(중증) 장애인인 그는 강단 바로 맞은편에 앉아 가장 큰 목소리로 찬송가를 부르고 있었다.
류 목사 설교가 시작되자 성도들은 중간 중간 “아멘”으로 화답하며 말씀을 경청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드리는 예배 현장으로서의 특별한 모습도 눈길을 끌었다. 설교 도중 한 성도가 몸에 경련이 왔는지 불편해하자 비장애인 성도가 자연스레 다가가 팔의 깁스를 풀어주며 마사지를 해줬다.
예배를 마친 뒤 류 목사와 성도들은 예배당에서 빵과 주스를 함께 먹으며 담소를 나눴다. 장애인 성도들과 함께 예배 봉사를 하는 황종순(51) 권사는 “비장애인으로서 장애인예배에 참여하는 게 봉사라고 생각하진 않는다”며 “모두 같은 성도로서 예배를 함께 드리는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영적 구원만큼 장애인 일자리 중요”
류 목사의 목회는 교인들에게 ‘장애인도 할 수 있다’는 희망과 자신감을 심어주고 있다. 그는 예배에 참석하는 장애인 성도 상당수가 교회 옆 ‘라이프라인 장애인자립진흥회’에서 교육을 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진흥회 회장으로서 장애인 성도들에게 일자리를 소개해주며 이들의 자립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진흥회는 2012년에 설립돼 장애인 활동지원사업, 평생교육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장애인들의 자립을 돕고 있다.
류 목사는 “감리교회에선 개인의 영적 구원을 통해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며 “장애인들이 교회 와서 주님을 만나는 것과 그들의 삶의 문제를 해결하는 건 별개이기 때문에 이를 돕는 차원에서 장애인들의 일자리를 만들어보고자 진흥회를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너와나의교회 청년회장인 김혜진 성도는 진흥회에서 4년 근무하다가 서울뇌병변장애인인권협회로 일자리를 옮겨 활발하게 일하고 있다. 그는 우정샘장애인자립생활센터를 개소하고 소장을 맡고 있기도 하다. 그는 “진흥회 근무 경력을 토대로 뇌병변인권협회 동작지회와 우정샘장애인자립생활센터를 세워 공익 활동을 하고 있다”며 “류 목사님 가르침이 늘 큰 위로를 주고 도전 의식을 갖게 해준다”고 고마워했다.
신지호 기자 ps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