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조대 추경·물가안정 엇박자… 새정부, 진퇴양난

입력 2022-05-09 04:04
뉴시스

윤석열정부의 첫 추가경정예산안이 이번주 윤곽을 드러낼 전망이다. 고물가·고환율·고금리의 ‘삼중고(高)’에 휩싸인 경제 상황에서 출범 직후 ‘1호 공약’을 이행해야 하는 정부가 진퇴양난에 빠졌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후보 시절 소상공인 1곳당 600만원 일괄지급 등 총 50조원 규모의 손실보상을 약속한 바 있다.

8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이번주 중 발표 예정인 30조원대 추경안에는 소상공인 지원과 방역·민생안정 예산이 포함된다. 문제는 대규모 추경이 물가안정과 재정건전성을 경제 정책 우선 과제로 제시한 새 정부 의도에 반한다는 것이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빅스텝’(기준금리 0.5% 포인트 인상) 후폭풍은 현재진행형이다. 미국 등 주요 선진국이 통화 긴축 속도를 내면서 한국은행의 금리 인상 속도가 빨라질 전망이다. 기준금리를 올려 시중의 유동성을 흡수하면 물가 억제효과가 있지만 사상 최대 규모의 가계부채로 인한 가계의 금리 부담은 가중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대규모 추경은 물가 불안을 자극하면서 금리인상 정책 기조와 엇박자를 낼 수밖에 없다. 재정 당국도 재정 정상화와 긴축재정을 검토할 시점이지만 출범 직후 추경으로 인한 대규모 재정 지출이 부담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후보자는 지난달 기자간담회에서 “물가안정을 위해서는 거시적으로 보면 금리로 대응해야 하고, 재정에서도 좀 더 긴축적으로 가야 한다”며 “추경은 거시경제 안정 노력을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 조합을 만들어보려고 한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이번 추경이 어쩔 수 없이 물가 상승을 자극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30조원 추경이 이전지출 형태인데, 국내총생산(GDP) 상승효과는 없고 소비에 직접 영향을 줘 물가 상승을 일으킬 것”이라고 말했다.

추경 재원 마련을 위한 적자국채 발행 여부도 정부 고민을 키우는 요인이다. 당초 정부는 가용재원을 최대한 동원하고 강도 높은 지출 구조조정으로 재원을 마련하겠다고 밝혔지만 정부 안팎에서는 대규모 추경 편성을 위해 일부 적자국채 발행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적자국채를 발행하면 재정수지 적자폭이 커질 뿐 아니라 금리인상 국면에서 시장금리 인상을 더 부추기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거시경제에 미칠 파급 효과를 고려해 지금이라도 정부가 ‘속도 조절’에 나서야 한다고 권고했다. 안 교수는 “공약을 안 지킬 수는 없고, 지키자니 통화·재정 정책 불확실성을 키우는 딜레마에 빠졌다”며 “분할지급 혹은 금융적인 테크닉을 활용해 물가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도 “지금 정책의 초점은 대외적 균형을 맞추는 데 둬야 한다”며 “대규모 추경 대신 몇 차례에 걸쳐서 나눠 하는 것도 한 방안”이라고 말했다.

세종=신재희 권민지 기자 jsh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