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보급 속도가 빨라지면서 배터리 제조에 필수적인 음극재에 대한 연구 개발이 탄력을 받고 있다. 기존 흑연 음극재를 통한 성능 개량이 한계에 다다른 상황에서 배터리 업계는 실리콘(Si)에 주목한다. 실리콘은 흑연보다 에너지 밀도를 비약적으로 높일 수 있는 원료로 평가 받는다.
8일 배터리 업계에 따르면 2025년까지 실리콘 음극재 수요는 연평균 70% 증가해 시장 규모가 3조~4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전체 음극재에서 실리콘 음극재가 차지하는 비중도 현재는 3% 수준이지만 4년 뒤엔 15%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때문에 장기 성장성이 높은 분야로 꼽힌다.
전기차에 쓰이는 리튬이온 배터리는 양극, 음극, 분리막, 전해질로 구성된다. 이 중 음극재는 배터리 수명, 충전 시간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양극재에서 많은 에너지를 만들어내더라도 이를 저장하는 역할인 음극재가 받쳐주지 못하면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이용할 수 없다.
그동안 음극에는 주로 흑연 소재가 사용됐다. 흑연은 가격이 저렴하고 안정적인 결정구조가 특징이다. 하지만 용량에 한계가 있다. 흑연 계열 음극재는 이론 용량 한계가 약 350㎃h/g 내외다. 그러나 이를 실리콘 계열 물질로 대체하면 기존보다 10배 이상 증가시킬 수 있다. 업계 관계자는 “실리콘 음극재를 사용하게 되면 기존 흑연 음극재보다 에너지밀도가 25%가량 향상되고 급속충전 속도도 50% 개선되는 등 성능이 크게 향상된다”고 말했다. 다만 실리콘 음극재는 충·방전에 따른 부피 팽창이 크다는 기술적 난제가 존재한다. 이에 K배터리 3사는 안정적으로 음극재 실리콘 함량을 높이는 연구에 주력하고 있다. 삼성SDI에선 실리콘을 머리카락 두께 수천분의 1크기로 나노화한 뒤 이를 흑연과 혼합해 하나의 물질처럼 복합화한 ‘SCN(Si-Carbon-Nanocomposite)’ 기술을 개발해 확대 적용하고 있다. 현재 ‘젠5’를 비롯해 자사 배터리에 최대 7% 수준의 실리콘 음극재를 적용하고 있다. 장기적으로 실리콘 함량을 두 자릿수로 높일 계획이다.
LG에너지솔루션은 이미 지난 2019년 실리콘 5% 음극재를 순수 전기차에 적용하고 있다(사진). 실리콘 7% 함량의 음극재 적용을 위한 기술 개발을 추진 중이다. SK온 역시 최대 7% 수준의 실리콘 음극재를 적용해 내년 상반기 출시될 미국 포드 전기차 모델에 탑재할 계획이다.
포스코케미칼은 내년 양산을 목표로 실리콘 음극재를 개발 중이다. SKC는 영국 음극재 스타트업 넥시온과 차세대 실리콘 음극재 기술인 ‘NSP-1’에 대한 독점 라이센스 계약을 체결하고 합작사를 통해 2024년부터 실리콘 음극재를 생산할 계획이다.
황인호 기자 inhovato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