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수처, ‘공수거’ 위기… ‘고발사주’ 아쉬움 털고 성과 낼까

입력 2022-05-06 00:05
김진욱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장이 4일 경기 과천시 정부과천청사 내 사무실을 나서고 있다. 공수처는 이날 고발 사주 의혹 수사 결과를 발표하고 손준성 전 대검찰청 수사정보정책관을 불구속 기소했다. 연합뉴스

문재인정부 검찰개혁의 상징과 같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는 새 정부 출범 이후 역할과 지위 재조정이 예고된 상태다. 공수처는 8개월 동안 전력한 ‘고발 사주’ 의혹 사건에서 수사 과정이나 결과 모두 아쉬운 성적을 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공수처로서는 시험대에 오른 수사 역량과 공정성 제고를 통해 존립 이유를 내보여야 하는 숙제를 안고 있는 셈이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지난 3일 발표한 110대 국정과제 중 형사사법개혁 분야에서 “공수처의 우월적 지위 남용, 정치 편향 등 폐단을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윤 당선인은 대선 후보 시절에도 “지금의 공수처는 권력 비리를 사정하는 것이 아니고, 거의 권력의 시녀가 돼 버렸다”며 날선 비판을 날렸었다.

우선 윤 당선인이 ‘독소 조항’으로 꼽은 공수처법 제24조부터 폐지가 추진될 수 있다. 국정과제에선 “공수처법 24조 폐지 등 검찰·경찰도 부패 범죄를 수사할 수 있도록 관련 법령을 정비할 것”이라고 제시됐다. 해당 조항은 다른 수사기관이 고위 공직자 범죄를 인지하면 공수처에 통보해야 하고, 공수처가 이첩 요청을 하면 사건을 넘겨야 한다는 내용이다.

이 조항 폐지는 고위공직자 범죄에 대한 공수처의 우선권을 없앤다는 뜻으로, 공수처 입장에서는 존립 근거의 한 축이 허물어지는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이창현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5일 “공수처가 고위공직자 범죄에 대해서 다른 수사기관과 동등한 권한을 갖는다면 설립 목적과 의미가 퇴색될 것”이라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이 강행 처리한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법안에 대한 새 정부의 대응책이 공수처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윤석열정부가 대통령령 개정 등을 통해 검찰의 직접 수사 대상을 개정 검찰청법이 정한 2대 범죄(부패·경제 등)보다 실질적으로 확대시킬 수 있다는 얘기다. 한 공수처 관계자는 “공수처법 24조가 폐지되고, 검찰 수사권 대상이 법안보다 넓어지면 부패 수사의 경우 검찰이 지금보다 더 많이 진행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다만 공수처로서도 지금까지의 수사 결과 등을 감안하면 새 정부의 방침에 반기를 들기는 애매한 상황이다. 고발 사주 의혹 수사에서도 끝내 고발장 작성자를 특정하지 못했고, 이에 따라 수사 ‘본류’였던 직권남용 혐의를 무혐의 처분할 수밖에 없었다. 한 검찰 출신 변호사는 “사건의 실질적인 대목을 명확히 수사로 밝혀내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다만 공수처 내부에선 “공판 단계에서 비로소 밝혀질 수 있는 사실도 많을 것”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공수처는 전날 고발 사주 의혹 수사 결과를 발표하는 자리에서 “신생 조직이고, 시스템이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막중한 사건을 맡게 돼 어려움이 있었다”고 토로했다. 이에 대해 이 교수는 “공수처가 출범한 지 1년이 넘었는데도 아직 신생 기관의 한계를 말하는 건 설득력이 떨어진다”며 “이제는 성과를 내야 할 때”라고 지적했다.

조민아 기자 minaj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