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 낙태와 국회의 직무유기

입력 2022-05-06 04:10

낙태는 논쟁적 이슈다. 생명권과 인격권이 내재돼 있고 여기에 윤리적, 형법적 문제도 얽혀 있다. 부끄럽지만 단순히 인구 관점에서 접근한 때도 없지 않았다. 종교적 논란이 되기도 하고, 정치도 개입한다. 찬성론이나 반대론 대신 허용과 금지 차원에서 다뤄지는 것도 이런 이유가 아닌가 한다. 극과 극의 주장이 첨예하게 맞서지만 나름 일리가 있다. 이렇듯 낙태는 정답이 없는 주제다. 어쩌면 영원히 풀 수 없는 숙제인지도 모른다.

미국이 낙태권 논쟁으로 뜨겁다.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지난 2일(현지시간) 50년간 낙태권을 보장해온 ‘로 대 웨이드(Roe v. Wade)’ 판결(1973년)을 뒤집는 내용의 연방대법원 결정문 초안을 보도했다. 새뮤얼 엘리토 대법관이 작성한 초안은 “로 대 웨이드 판결은 논리가 허약하고 해로운 결과를 초래했다”고 밝히고 있다. ‘태아가 자궁 밖에서 생존할 수 없는 임신 23~24주 이전에는 임신 중지가 가능하다’는 로 대 웨이드 판결을 부인하는 내용이다. 공화당 입장과 맥을 같이한다. 민주당은 발끈했다. 당장 조 바이든 대통령은 “여성의 낙태권을 성문화한 입법을 추진하겠다”고 반발했고,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 역시 “현대사에서 가장 해로운 최악의 판결이 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낙태권 논란이 정치권으로 비화되면서 오는 11월 미국 중간선거에 핵심 이슈가 될 전망이다.

국내 낙태 논쟁은 현재진행형이다. 헌법재판소는 2019년 4월 11일 낙태죄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법적 결론은 났으나 사회적 합의에 이른 것은 아니다. 아직 ‘태아는 생명, 낙태는 살인’이라는 주장을 배척하기 힘들다. 다만 시대의 상황적 논리가 대세 형성에 영향을 미칠 뿐이다. 낙태는 논쟁적이고 민감한 이슈이면서도 국민과 밀접한 사안이다. 헌재 결정에 따라 낙태죄는 2021년 1월 1일부터 사법(死法)이 돼 효력을 상실했으나 국회는 대체입법에 나서지 않고 있다. 나태함 탓인지, 표를 의식한 때문인지 모르겠다. 소위 검수완박 관련법을 전광석화처럼 처리했던 그들이다. 직무유기 아닌가.

박현동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