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윰노트] 새벽에 전송된 사과 사진 여섯 장

입력 2022-05-06 04:02

아침에 일어나 휴대폰을 열어 봤다. 어? 문자가 여섯 통이나 와 있네. 아니, 누가 신새벽에 문자를 보냈지? 시골에 살고 계시는 시어머니였다. 상처가 크게 난 사과 사진만 여섯 장.

사연은 이랬다. 지인이 선물로 보내준 사과가 꽤 맛있었다. 과수원이 어딘지 수소문해 나도 두 상자를 추가 구매했다. 그중 하나를 어머니께 보냈는데 곧 전화가 왔다. 사과 두 개에 커다란 상처가 났단다. 마치 일부러 집어던진 것처럼 보여서, 그냥 넘기기 찝찝하셨나 보다. “어머니, 그럼 사진 좀 찍어서 보내주세요. 과수원 주인한테 보내게요.”

여든이 훌쩍 넘으신 어머니는 휴대폰을 걸고 받는 데만 쓰셨다. 그런데 몇 년 전 버스 여행을 갔다가 즉석에서 노인회장에게 감사 문자를 보내라는 미션을 수행하지 못했다. 어머니 딴에는 자존심이 상하셨는지, 만만한 며느리에게 문자 보내는 법을 가르쳐 달라고 하셨다. 처음 한글을 가르치듯 하나하나 자판 두드리는 법부터 알려드렸다. 만날 기회가 있을 때마다 반복 훈련을 했다. 할 말이 있으면 어머니께 문자를 보냈고, 전화 말고 문자로 답장을 보내시라고 압박을 넣었다. 오랜 연습 끝에 간신히 문자쯤은 보내는 수준에 올랐다. 가끔 하트 이모티콘까지 보내실 땐 얼마나 뿌듯하던지.

내 생각에는 문자랑 비슷한 것 같은데 이상하게도 사진 전송은 못하셨다. 메모지에다 순서대로 적어드렸는데도 어렵다는 거다. 앨범으로 들어가서 사진을 첨부하는 절차가 익숙해지지 않나 보다. 화단에 활짝 핀 모란꽃을 기껏 여러 장 찍으셨지만 보여주지 못해 안타까워하셨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상처가 난 사과 사진을 찍긴 했는데 도통 보낼 수가 없었다. 유선 전화기로 바꿔 들고, 아무리 설명을 거듭해도 실패였다. 약간 지치고 짜증이 난 채로 통화를 마무리했다.

얼마나 답답하셨으면 잠도 안 자고 밤새 휴대폰만 들여다보신 걸까. 이렇게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다가, 소가 뒷걸음치다 개구리 잡은 격으로 사진이 전송된 거다. 그러니 똑같은 사과 사진이 여섯 장이나 날아왔지. 직접 말로 듣지 않아도 어떤 사정인지 짐작이 갔다. 괜히 죄송하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했다. 20여년 후쯤 어쩌면 내 처지가 그럴 것 같아 살짝 두렵기까지 했다. 아니, 20년 후까지 갈 필요가 있을까. 50대인 나는, 요즘엔 다섯 살짜리도 척척 한다는 유튜브를 어떻게 올리는지도 모른다.

나이가 들면서 손은 굼떠지고 뇌 기능은 저하되기 마련이다. 그런데 날이면 날마다 세상은 스마트해지라고 강요한다. 그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면 소외되고 도태될 일만 남았다. 가장 고생하는 건 몸이다. 젊은 사람들은 어디서든 빈자리를 찾아 척척 사는 열차표를 노인들은 서울역까지 가서 줄을 서야 한다. 영화를 보거나 햄버거 하나 사 먹으려 해도 복잡한 키오스크 앞에서 진땀을 흘린다. 어머니는 송금할 일이 있으면 버스를 타고 읍내에 있는 은행까지 가신다. 그나마 동네 노인들 중에 ATM을 이용할 줄 아는 분도 거의 없다.

게다가 코로나 팬데믹으로 노인들에겐 더 가혹한 디지털 세상이 성큼 와 버렸다. 다운받은 QR코드가 없으면 본인임을 증명하지 못하는 초유의 사태를 겪었다. 시어머니처럼 친정어머니도 그렇다. 두 어머니는 단골 식당 문을 열고 들어설 때조차 잔뜩 주눅이 들었다. 병원에 가는데도 전송받은 문진표를 미리 작성해야만 입장이 가능했다. 젊은 세대에겐 빠르고 편리하기 그지없는 시스템이 두 어머니에겐 그저 두렵고 골치 아픈 절차로만 다가왔을 게 뻔하다. 그나마 의지할 자식도, 물어볼 사람도 없는 수많은 독거노인들은 3년간의 엄혹한 코로나 시절을 대체 어떻게 견뎌냈을까.

동네 공원, 햇빛 바른 곳에 나와 옹기종기 앉아 있는 어르신들을 보니 마음이 짠하다. 친구들은 물론 자식과 손주들조차 만나지 못해 가장 고달팠던 세대다. 이번 어버이날에는 두 어머니를 꼭 안아드려야겠다. 잘 견디셨다고. 스마트폰 같은 건 저만치 치워 놓고.

마녀체력 ‘걷기의 말들’ 작가·생활체육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