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만사] X세대 정치의 독립

입력 2022-05-06 04:07

정치가 낡았다는 생각을 자주 하지만 그 대안이 뾰족하게 떠오르지 않는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등장, 이재명 전 경기지사의 약진, 오세훈 서울시장의 부활을 바라보며 막연히 어떤 흐름이 새로 시작되는 게 아닌가 싶었던 정도다.

윤 당선인은 정치 신인이고, 이 전 지사는 정치력보다 행정력을 바탕으로 대선 후보에 올랐다. 정치 팬덤이 없는 오 시장도 이재명의 길을 밟는 중이다. 작금은 대형 정치 엘리트가 실종된 시기라 할 만하다. 그러다 정치권의 40대, 조금 더 폭넓게 보면 X세대의 빈자리가 눈에 밟히기 시작했다. 사람이 없는 건 아닌데 눈에 띄는 활약을 하는 이가 잘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1987년 민주화 항쟁 당시 9살이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교련복을 입고 제식 훈련을 받았지만 그해 말 폐지됐다. 대입에 수능이 도입되면서 본고사 모의고사도 그해 사라졌다. 97년 대학 입학 후엔 외환위기가 왔다. 98년 초 육군 입대를 하려 했으나 2년을 기다려야 한다는 말에 대기가 짧았던 공군에 입대했던 기억이 있다. 입사 후 채 몇 년이 지나지 않았던 2008년엔 글로벌 금융위기가 왔다. X세대는 외환위기 당시 부모의 경제적 위기에 숨죽이며 인내했던 자식들이고, 2008년엔 붕괴된 자산시장을 견딘 회사원이었다. 90년대 초반 ‘오렌지족’으로 불리며 방탕한 경제 성장의 수혜자로 묘사됐지만 실제론 두 차례 경제 위기로 생존이 우선순위가 된 세대다. 그렇다 보니 사회 각 분야에서 좋게는 ‘말 잘 듣는 모범생’, 나쁘게는 ‘소심한 중간 관리자’의 평가를 받는 경향이 있다.

정치적으로는 윗세대의 정치 혁명에 가장 큰 영향을 받았다. 김대중정부 이후 연이은 남북정상회담을 목격했던, 진보 성향이 대체로 강한 집단이다. 현재 더불어민주당의 가장 견고한 지지층이 40대인 것도 이런 이유일 것이다. 정치적으로는 민주화 혁명의 영향을, 경제적으로는 산업화 시대의 수혜를 받은 세대로 볼 수 있다. 그런데 다른 분야와 달리 정치권에선 이들이 잘 보이지 않는다. 있다 하더라도 대체로 윗세대의 정치를 그대로 학습해 반복하는 경우가 많다. 시대는 변하고 있는데 이들은 과거 레토릭만 되풀이하는 중이어서 그 자리를 60대 정치인으로 바꿔 놓는다 해도 이질감이 없다. 나아가 정치 입문 전 활동을 훈장 삼아 별다른 의정 활동 없이 거물 행세를 하는 일부를 보다 보면 혀를 찰 수밖에 없다.

최근 민주당의 한 중진은 “우리는 여전히 가치와 신념에 따라 정치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민의힘 일부가 기회주의적이라며 비판하다 나온 발언이다. 캐묻진 않았지만 그 가치가 여전히 유효한지가 문제겠다. 시대적 변화를 외면한 가치만 고집한다면 공감을 얻기 어려울 것이다. 다른 민주당 관계자는 “40대의 민주당 지지율은 여전히 높지만, 지난 대선 그들의 투표율은 ‘역대급’으로 낮았다. 그게 패인의 하나”라고 돌아봤다. 가치를 관철하는 절차도 문제다. ‘검수완박’ 법안 처리 과정을 보면 부끄러워 얼굴이 화끈거릴 정도다. 위장 탈당에, 합의 번복에, 여야 기성 정치권의 구태에 숨 막혀 고개 돌리다 보니 40대 정치인이 없다는 데 시선이 꽂힌 것이다. 요새 정치권 행태를 보아하니 정치 신인이 중앙에서 스스로 성장하긴 어려운 환경이긴 하다. 먼저 지역구와 국회 상임위원회에 심혈을 기울여 경쟁력을 쌓았으면 좋겠다. 여야 간 교류에도 적극적이었으면 한다. 패 가르기야말로 윗세대 정치의 가장 큰 문제다. 실력은 없으면서 밑도 끝도 없이 큰 정치만 얘기하는 이들도 피했으면 한다. 윗세대가 만든 정치 성공 공식에 충실한 말 잘 듣는 모범생의 시대는 끝난 것 같다.

강준구 사회2부 차장 eye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