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을지로 노가리 골목에 가면 ‘을지OB베어’라는 가게가 있다. 이 가게는 1980년에 1대 사장님이 인근 노동자와 서민을 위해 저렴한 가격의 연탄구이 노가리와 고추장 안주를 개발하면서 시작됐다. ‘노맥’(노가리+맥주)의 원조로 유명해서 방송과 뉴스에도 종종 소개됐다. ‘을지OB베어’는 인기에도 불구하고 6평 남짓 가게를 확장하지 않고 대를 이어 42년째 장사를 해왔다. 그런 가게가 최근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다.
을지로 노가리 골목은 2015년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되었고, 야간에도 골목에 테이블을 깔아놓고 맥주를 마실 수 있는 야장영업이 특별 허가됐다. 하나의 가게가 유명해서라기보다 주변에 하나둘씩 늘어난 ‘노맥’ 가게들과 공생하며 을지로 노가리 골목 특유의 문화가 만든 가치를 인정받아 얻은 것이다. 하지만 몇 년 전 만선호프를 인수한 새로운 사장이 주변 가게들을 사들이면서 10여개의 가게가 사라졌다. ‘을지OB베어’도 예외는 아니었다.
지난 4월 21일에는 새벽에 70여명의 용역이 가게에 들이닥쳤고 간판이며, 집기며 모두 거리로 내쳐졌다. ‘백년가게’로 선정된 이력이 무색하게 강제로 문이 닫힌 것이다. 만일 처음부터 건물주 한 명이 자본으로 인근 상가를 매입해서 인위적으로 ‘노맥’거리를 만들었다면, 이곳은 ‘미래유산’으로 지정될 수 없었을 것이다. 문화란 돈만으로 만들 수 없으며, 돈으로 문화를 독점하려고 들면 사라지기 때문이다.
이제 ‘을지OB베어’는 지도에서 검색해도 찾을 수 없다. 그럼에도 매일 밤 사람들이 그곳을 찾아 ‘을지OB베어’를 지키고 있다. 그곳에서 만선호프를 향해 “을지로 노가리 골목은 그 누구의 것도 아닌 우리 모두의 것”이라고 말한다. 오랜 시간 사람들이 만들어낸 문화를 이윤으로만 보고 취하려고 할 때 우리에게 ‘미래유산’이란 남아 있을까. 이것이 ‘을지OB베어’가 다시 문을 열어야 하는 이유다.
천주희 문화연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