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는 8개월간 수사한 ‘고발 사주’ 의혹에 대해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할 공무원이 4월 총선에 부당관여한 선거범죄로 결론지었다. 다만 공수처는 고발장 작성자를 완벽히 특정하지 못했고, 이 때문에 선거관여 행위를 지시한 ‘윗선’이 존재하는지는 규명하지 못했다. 향후 법정에선 고발장의 작성·전달 주체가 과연 누구인지, 총선 전 실제 고발이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범행이 인정될지를 놓고 치열한 공방이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공수처가 4일 손준성 전 대검찰청 수사정보정책관(현 대구고검 인권보호관)을 불구속 기소하면서 적용한 공직선거법 조항은 공무원의 선거관여를 금지하는 85조1항이다. 공수처는 손 전 정책관이 고발장을 활용해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현 대통령 당선인)과 가족에 대한 비난 여론을 무마하고, 여권 인사들에 대한 부정적 여론을 형성하려 했다고 판단했다. 손 전 정책관은 우연히 휴대전화로 문제의 문서들을 제보받은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공수처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손준성 보냄’이라는 문구가 적힌 텔레그램 메시지 속 고발장은 2020년 4월 15일 총선 이전에 실제 검찰에 접수되진 않았다. 이 때문에 “실제 고발에 이르지 않았는데 선거에 부당한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느냐”는 의문도 제기됐다. 하지만 공수처는 대법원 판례를 언급하며 “‘추상적 위험범’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이는 특정 행위가 현실적 위험으로 이어지지 않더라도 일반적 위험성을 노출시켰다면 처벌할 수 있다는 의미다.
법조계에서도 “실제 고발장 제출이 없었더라도, 그 이전 단계 행위만으로도 이론상 유죄는 가능하다”는 해석이 나왔다. 한 변호사는 “기소할 만한 구성요건은 찾은 것”이라고 평했다. 다만 유죄 판단까지는 손 전 정책관이 김웅 국민의힘 의원에게 직접 고발장을 전달했는지, 선거관여 의도는 있었는지 등이 보다 확실해져야 한다. 수도권의 한 부장판사는 “이론상 추상적 위험범이 가능하나 그 이전에 사실 인정의 문제가 남아 있다”고 말했다.
법조인들은 8개월 수사에도 고발장 작성자가 특정되지 않아 법정에서도 ‘사실 인정’이 수월해 보이지 않는다고 전망했다. 고발 사주 의혹이 지난 대선 정국을 강타했던 것은 손 전 정책관의 ‘윗선’ 관여 여부 때문이었는데, 이와 관련된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는 손 전 정책관을 포함해 모두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김진욱 공수처장은 지난해 9월 “이 사건은 여러 혐의가 있지만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가 ‘본령’”이라고 했었다. 한 차장검사 출신 변호사는 “한계가 있었겠지만 작성자와 행위를 특정하지 못했다면 기소를 해선 안 됐다”고 평했다.
손 전 정책관 등에 대해 불기소 권고를 한 것으로 알려진 공수처 공소심의위원회의 의견을 따르지 않은 것도 쟁점 중 하나다. 이에 공수처 관계자는 “공심위 권고를 수용한 부분도 있고, 수사팀이 나름대로 증거·법리를 검토해서 발표한 측면도 있다”고 설명했다.
조민아 구정하 기자 minaj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