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 취임을 엿새 앞둔 4일 탄도미사일을 발사했다. 새 정부 길들이기 목적의 무력시위다. 특히 오는 21일 열리는 한·미 정상회담을 견제하며 정세 주도권을 확보하려는 의도로 분석된다.
합동참모본부는 “이날 낮 12시3분쯤 평양시 순안 일대에서 동해상으로 발사된 탄도미사일 1발을 포착했다”고 밝혔다. 이동식발사대(TEL)에서 쏜 것으로 추정되며 비행거리는 약 470㎞, 고도 약 780㎞, 속도는 마하 11로 탐지됐다.
정보 당국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5형’을 사거리를 줄여 고각 발사했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는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북한은 화성-17형을 사거리를 줄여 시험발사한 뒤 정찰위성 개발을 위한 실험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청와대는 서훈 국가안보실장 주재로 국가안전보장회의(NSC) 긴급회의를 열고 “북한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를 위반하며 탄도미사일을 발사한 데 대해 강력히 규탄한다”고 밝혔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도 북한을 규탄하며 “윤석열정부는 한·미 간 철저한 공조를 토대로 북한 핵·미사일 위협에 보다 근본적인 억제대책을 마련해 나갈 것”이라는 입장을 내놨다.
이날 미사일 발사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달 25일 조선인민혁명군 창건 90주년 기념 열병식 연설에서 ‘선제 핵공격’ 가능성을 언급한 이후 첫 도발이다. 김일성 생일 110주년 등이 있던 4월을 축제 분위기로 보낸 뒤 5월로 넘어오면서 핵무력 강화라는 자신들의 본래 계획으로 돌아간 것 아니냐는 분석이 제기된다.
박원곤 이화여대 교수는 “북한은 미사일 수준을 최대로 끌어올려 핵보유국으로 인정받겠다는 절대적 목표를 추구하는 것 같다”며 “그래서 미사일 도발이 한 번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류샤오밍 중국 한반도사무특별대표가 방한 중인 상태에서 쏜 것도 좌고우면하지 않고 무력 강화에 매진하겠다는 의미로 읽힌다.
북한이 윤석열정부 출범과 곧이어 열릴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본격적으로 도발 수위를 끌어올리겠다는 ‘신호탄’을 쏘아올린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부총장은 “새 정부 출범, 한·미 정상회담이 예정된 5월 초부터 긴장을 고조시킴으로써 한반도 문제의 주도권이 자신에게 있음을 과시하려는 의도로 보인다”며 “신형 ICBM 성능을 지속 개량하고 전술핵 운용을 위한 7차 핵실험 준비를 계속하면서 한·미를 압박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군과 전문가들은 북한이 ICBM은 물론 핵실험까지 도발 수위를 점차 높일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한다. 7차 핵실험을 강행한다면 소형 전술핵무기 개발을 위한 것일 수 있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북한연구센터장은 “북한이 앞으로 전술핵무기를 전방 지역에까지 실전배치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우리 정부가 북한의 핵무기에 재래식 무기로 맞서는 정책을 계속 고수하는 게 현실적인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김영선 정우진 기자 ys8584@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