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바이든, 4대그룹 ‘콜’… 반도체·배터리 큰 ‘보따리’ 풀까

입력 2022-05-05 00:03

한·미 정상이 잇달아 4대 그룹 총수를 만난다. 재계에서는 이전과 달리 기업인 위상이 높아진다는 기대를 품고 있다. 다만 ‘청구서’가 따라온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정치권의 과다한 투자 및 일자리 창출 요구가 기업에 부담으로 작용한다고 우려도 제기된다.

4일 재계에 따르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 등은 오는 10일 열리는 윤석열 대통령 취임식 만찬에 초대됐다. 4대 그룹 총수는 참석 여부를 확정하지 않았지만 큰 변수가 없으면 모두 참석할 것으로 알려졌다. 윤 당선인이 이날 4대 그룹 총수를 만나면 대통령으로서 기업인들과 첫 회동하는 자리가 된다.

재계에선 4대 그룹 총수를 취임식 만찬에 초청한 것은 기업에 힘을 싣는 행보라고 해석한다. 윤 당선인이 그동안 경제 성장에서 민간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해 왔기 때문이다. 재계 관계자는 “기업과 함께 가자는 메시지를 던지는 것 아니겠느냐”고 기대감을 드러냈다.

특히 새 정부는 국정추진 과제로 반도체, 인공지능(AI), 배터리 등 미래전략산업의 ‘초격차’를 내세운다. 메모리반도체는 글로벌 시장에서 점유율 70%를 넘는 압도적 1위이고, 전기차 배터리도 시장 선두권을 유지하고 있다. 동시에 시스템반도체에서 선도기업과 격차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 AI 경쟁력은 제자리걸음이다. 해결해야 할 과제가 산적한 것이다.

또한 반도체, 배터리는 각국 정부에서 ‘안보자산’ ‘안보물자’로 선정하고 챙기는 산업이다. 미국은 공급망 재편에 속도를 붙이면서 반도체, 배터리에 무게를 싣고 있다. 또 다른 재계 관계자는 “반도체, 배터리 등을 안보물자로 취급되는 현재 상황에서 국내 투자가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고 언급했다.

새 정부는 규제를 풀고 지원을 과감하게 하겠다는 입장이다. 산업계 관계자는 “반도체, 배터리, AI는 모두 정부가 판을 잘 깔아줘야만 기업이 활발하게 움직일 수 있는 분야다. 구체적인 정책이 나와봐야 알 수 있지만 현재까지 새 정부에 거는 기대가 더 큰 분위기”라고 전했다. 재계에선 새 정부의 정책 방향에 따라 4대그룹을 주축으로 대규모 투자계획을 발표할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반도체, 배터리 등은 대규모 투자가 필요한 산업이다. 정부의 정책 지원이 뒷받침된다면 이전보다 더 공격적으로 투자에 나설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다 오는 20~22일 방한하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도 4대 그룹 총수와 별도의 만남을 추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바이든 대통령은 한국 기업들의 미국 투자 확대, 경제동맹 강화를 언급할 것으로 예상된다. 4대 그룹은 지난해 한·미 정상회담 때 44조원 규모의 투자계획을 발표했었다. 삼성전자는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시에 170억 달러 규모의 반도체 공장을 신규 건설하기로 했다. 현대차는 2025년까지 74억 달러를 미국 내 전기차 생산, 도심항공모빌리티 등의 미래 모빌리티 사업에 투입한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지난해 11월 미국 정재계 인사들을 만나 2030년까지 미국에 520억 달러를 투자하고, 그중 절반은 전기차 배터리와 수소 등의 친환경 분야에 집중하겠다고 밝혔었다. LG그룹에선 LG에너지솔루션이 지난 3월에 6조5000억원을 투자해 미국 캐나다 등에서 전기차 배터리 공장을 확장한다고 발표했다. 주요 기업이 활발하게 대미(對美) 투자를 진행하고 있어 이번 만남에선 구체적인 숫자 대신 미국의 공급망 재편에 한국 기업이 우방으로 참여해 ‘한·미 경제동맹’을 더 공고히 하겠다는 메시지를 던질 가능성도 있다.

기업들도 추가 대미 투자에 신중하게 접근한다는 분위기를 보인다. 인건비, 제조원가 등을 고려하면 미국에 공장을 짓는 게 경제성이 떨어지는 경우도 있어서다. 미국과의 경제동맹을 지나치게 부각하면 중국 등에서의 사업에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다. 한국 기업들은 과거 중국의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보복’으로 호되게 곤욕을 치렀다. 일부 기업은 아예 중국에서 사업을 접고 철수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정부에서 외교와 경제·산업 정책을 아우르는 큰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기업은 돈이 되면 어디든 진출한다. 지정학적 문제로 기업 활동이 제한되면 기업이 할 수 있는 건 없다. 정부 차원에서 외교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준엽 기자 snoopy@kmib.co.kr